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룽먼석굴 (문단 편집) == 눈여겨볼 동(洞) == * 재불동(齎祓洞) 제1동이다. 잠계사동(潛溪寺洞)이라고도 한다. 초당, 정관15년(641), [[당태종]]의 4남인 위왕(魏王) 태(泰)의 발원으로 조영되었다. 폭 9.4m, 안길이 6.7m, 거의 타원형인 평면, 원형 천정으로 높이는 10.6m이다. 본존의 좌불상과 좌우에는 협시의 [[나한]] ∙ [[보살]] ∙ 신왕이 있다. * 빈양동(賓陽洞) 제2, 3, 4동이다. [[북위]] [[선무제]]의 발원으로 정시2년(505)에 시작하여 중동(中洞)은 [[북위]] 말까지 10수년에 걸쳐서 만들었다. 입구의 폭 5.2m, 안길이 6m, 안벽의 폭 7.7m. 본존은 좌상대불이고, 좌우에 [[보살]]과 [[나한]], 전좌우에 [[사자]], 좌우벽에 삼존상(三尊像)이 있다. 원형천정에는 큰 [[연꽃]]을 둘러싼 주악[[비천]], 앞벽 상단에 '''유마문수(維摩文殊)의 문답''', 중단(中段)에 '''본생도(本生圖)''', 하단에 '''황제 황후의 예배''', 요벽에 '''10신'''의 부조가 있고 마루에도 연꽃과 구갑이 조각되어 있다. 외벽 좌우에는 반육조(半肉彫)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있다. 남동과 북동의 본존은 좌상의 오존상. 원형 천정으로, 중동(中洞)과 닮은 장엄한 형식이며 남동(南洞)은 [[북제]]~수, 북동(北洞)은 수~초당(初唐)까지 공사를 하였다. *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 빈양 중동 남쪽벽에 있는 마애비(磨崖碑). [[염위]]의 왕태가 생모 [[문덕왕후]]를 위하여 빈양삼동을 보수, 재불동(齎祓洞)을 신조한 것이 기록되어 있음. 잠문본 찬(撰), [[저수량]] 필(筆)의 예서를 닮은 해서체. 정관15년(641)에 새겼다. * 경선사동(敬善寺洞) 제5동. 당초 ∙ 정관18~현경3년(644~658)의 건조. 폭 ∙ 안길이 모두 약 3.2m인 방형평면. 본존좌불과 좌우에 소보살, 좌우벽에 [[나한]] ∙ 공양자 ∙ [[보살]] ∙ 신왕과 [[연꽃]] 가지 위의 소보살을 배치했다. * 만불동(萬佛洞) 제9동. 당초 ∙ 영륭원년(680) 대감조신상과 내도장지운선사 발원의 조각명이 있고, 영륭동이라고도 함. 주실의 폭 5.8m, 안길이 6.8m. 중앙 팔각대좌상의 좌불과 반육조 협시로 된 오존불. 좌우벽에 신왕, 주위벽 전체에 1만 5천체의 소불을 조각함. * 사자동(獅子洞) 제10동. 바깥벽에 [[불탑]]의 석각이 있고 ‘탑동’이라고도 함. 초당 ∙ 상원2년(675)의 각명(刻銘)이 있다. 폭 2.4m, 안길이 2m의 사각형 평면. 본존은 네모난 좌대 위에 앉아 있고, 두발(頭髮)은 와권상(渦巻狀). 좌우에 보살, 전좌우에 [[사자]]가 있다. * 혜간동(惠簡洞) 제11동. 남벽 동쪽 구석에 초당 ∙ 함형4년(673) 서경법해사(西京法海寺)의 승(僧) 혜간(惠簡) 발원의 각명(刻銘)이 있다. 폭 3.8m, 안길이 3m. [[미륵]]의 상(倚像)을 중존으로 하는 5존상이 있다. * 연화동(蓮花洞) 제13동. [[북위]] 숙종 [[효명제]] 정광(520~525) 초년에 대략 완성하였다. 그후 좌우벽에 6[[비천]](飛天)이 조각되었고, 상감(像龕)은 [[북제]]~초당(初唐)에 만든 것임. 입구에 화염첨공(火焰尖拱)의 선조(線彫)가 있고 동굴 내부는 폭 5.5m, 안길이 9.8m의 장방형 평면. 본존은 석가입상을 중심으로 천정에는 큰 [[연꽃]] 부조가 있다. * 위자동(魏字洞) 제17동. [[북위]] 말의 정광~효창(520~527)경에 만들어졌다. 폭 3.9m, 안길이 3.2m. 보단 위에 5존상이 있고, 천정에는 [[비천]]부조가 있다. 좌우벽에도 5존상의 불감이 있고 그 주위와 앞벽에 걸쳐서는 [[석가모니]] ∙ [[미륵보살]] ∙ [[관음보살]]의 상감(像龕)이 정연하게 늘어섰다. * 당자동(唐字洞) 제18동. 초당경에 만들었으나 내부는 미완성 상태이다. 외벽에 목조건물을 흉내낸 처마[軒]가 조각되고, 그 밑 입구 좌우에는 많은 초당명(銘)의 상감(像龕)이 있다. 동굴 내부는 폭 4.5m, 안길이 3.5m인 방형평면. * 봉선사동(奉先寺洞) 제19동. 서산 중앙의 산허리를 약 30m 사방으로 파헤친 대동굴. 초당 ∙ 함형3년(672) [[당고종]]의 칙명으로 건조가 시작되었고, 상원2년(675)에 낙성. 본존인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은 높이 13m, 통견(通肩)인 대불이며 중층연반(重層蓮弁) 8각대좌에 앉아 있음. 대좌의 기부는 현재 흙 속에 묻혀 있고 광배 꼭대기가 약 16m. 좌우에 나한 ∙ 보살 ∙ 역사 ∙ 신왕 등 도합 9체가 서있어 속칭 9간방(九間房)이라고 부른다. * 약방동(薬方洞) 제20동. 문양측에 북제의 도읍사(都邑師) 도흥(道興)의 '''치질방(治疾方)''' 석조가, 외벽 좌우에는 대[[비천]]과 역사(力士)를 배치한 북제시대의 부조가 있다. 동굴 내부는 폭 3m, 안길이 3m의 방형평면. 본존은 보단(寶壇) 위에 좌불과 환조의 협시 보살 ∙ 나한으로 된 [[수나라]] 양식의 5존상. 좌우벽에도 수나라 식의 5존상을 봉납하는 불감이 있으며, 주위의 소상감(小像龕)에는 [[북위]] 말(北魏末)부터 당초(唐初)까지의 조상명(造像銘)이 있다. * 고양동(古陽洞) 제21동. 속칭 노군동(老君洞)이라고도 한다. 용문 최고(最古)의 석굴. [[북위]] [[효문제]] 태화 18년(494년) 경에 착공하여, [[선무제]](재위 499~515) 말년에 대충 완성하였다. 동굴내는 폭 6.75m, 안길이 13m의 마제형(馬蹄形) 평면, 원형천정이며 높이는 약 11m이다. 정면의 2단 보단상(寶壇上)에 본존좌불, 후벽 좌우구석에 양협시보살의 입상, 앞쪽 좌우에 사자상 들어서있다. 주위벽의 상감(像龕) 감(龕) 중에 북위의 것은 석가좌상 24, 미륵교각상(交脚像) 29, 관음입상 11, 그외에 이불병좌상(二佛並坐像) 등이 있고, 조상명(造像銘)은 '''용문20품'''을 비롯 당대(唐代)의 것을 포함하면 100여개에 달한다. * 극남동(極南洞) 제28동. 서산 최남단에 있고 입구는 동남쪽으로 열려 있다. 정토동(浄土洞, 제26동, 본존불은 [[아미타불]]의상)과 같이 [[측천무후]] 시기(690~705)에 건조하였다. 동굴내는 폭 4.7m, 안길이 3.45m. 본존은 5존상이다. * 간경사동(看經寺洞) 동산의 만불구(萬佛溝) 북쪽에 있다. 성당(盛唐) 초기의 조영(造營)이다. 한변이 약 11m의 방형평면이고, 높이 약 6m인 평천정(平天井)에는 대연화를 둘러싼 6[[비천]]의 부조가 있다. 본존은 통견(通肩)의 좌불이며 8각대좌 위에 앉아 있음. 좌벽의 4주요벽(四周腰璧)에는 거의 등신대의 행렬하는 나한 29체가 부조되어 있다. * 뇌고대삼동(擂鼓坮三洞) 동산 만불구 남쪽에 있다. 남 · 중 · 북동굴 모두 남서로 면해 열려 있으며, 원래에는 성당 초기의 조영. 남동은 폭 7.7m, 안길이 5.8m, 본존은 편단우견(偏袒右肩)인 좌불상이며, 방형(方形)대좌에 앉아 있고 4벽의 연지상 천불체의 부조는 천정에까지 이른다. 중동굴은 폭 6m, 안길이 5m. 3기의 삼성보단(三成寶壇)에 본존인 수각(垂脚)미륵과 양보살을 안치함. 좌우벽과 천정에 천체불(千體佛), 4주(四周)요벽에 『25조사』를 부조하였다. 북동은 한변 3m인 방형평면이며 둥근천정. 중앙과 좌우벽에 방좌상(方座上)의 좌불을 안치하였다. 앞벽 우측의 11면 4비관음, 좌측의 6비보살은 용문에 있어서 다면다비상(多面多臂像)의 한 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