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룻기 (문단 편집) == 저술 목적과 시기에 대한 이야기 == 룻기는 [[유대인]]들의 축일에 낭독되는 축제문서인 '메길롯' 5권 중 첫번째에 위치하며, 전통적으로 [[오순절]]에 추수를 마친 후 이를 감사하며 대중적으로 읽혀졌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은 내용상으로 봤을 때 절대로 축일에 낭독될 이유가 없는 책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정설로 인정할 경우 다윗의 혈통에 이방인인 모압의 피가 섞이게 되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정통성에 흠이 있는 존재가 아니냐는 태클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를 들어 이 책의 저술 시기를 최대한 늦게 잡아 아예 기원전 2세기~1세기 정도의 [[예수]] 탄생 직전 시기까지 뒤로 미루는[* [[가톨릭]]에서의 [[성경]]역사 연구 중 21세기 들어서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등의 역사서 [[외경]]과 동일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간주하는 의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룻기에 드러나는 일부 [[아람어]]식 표현이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 의견도 있을 정도이며, 더 나아가서는 이 책이 다윗 왕조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포로기 당시 유행했던 외국인과의 결혼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을 지녔다고 보는 소수 의견도 있을 정도다.[* 이 부분은 [[사무엘기]] 뒤쪽(기독교에서 사무엘하로 분류하는 것)에 있는 다윗의 모압 정벌 및 '2줄 길이의 사람'을 학살한 내용과, 유대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사상에서 기반한다.] 그러나 이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혈통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려 했던 전통을 무시하는 의견이다. 당장 [[토라]]의 가장 앞에 놓인 [[창세기]] 38장에 기록된 유다와 타마르의 경우만 봐도 '며느리가 창녀로 변장해 시아버지에게서 정을 받아 후사를 잇는 이야기'가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이 때 얻은 아들 중 하나인 베레스가 유다 지파의 유력 가문의 선조가 되어 다윗 왕의 족보로 이어진다. 또한 [[사무엘서]]에서 다윗이 도망다니는 부분을 보면 모압 지방으로 도망갔을 때 자신의 아버지의 집을 모압 지방에 살게 해 달라고 모압 왕에게 청하는 부분이 나오고, 유대인들의 민간 전승에도 룻이라는 존재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으나 다윗의 가문이 모압 지역과 어떤 식으로든 친분이 있었다는 여러 야사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 시기에는 혈통 특히 종교적 혈통이 주는 중요성이 뼛속까지 새겨지기 전이라 이런 저런 예외가 있었을 수 있다] [* 그리고 포로기에서 돌아오고 성전이 재건되며, 성벽이 수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룻기에 들어갔을 수는 있다. 당시 종교 지도자인 에즈라는 원리원칙적으로 판단해 이방 여인과 결혼한 유대인들에게 사실상 이혼을 명령하였고, 정치 지도자인 느헤미야는 기왕 벌어진 현실은 인정하고 단순히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막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으려 했다. 그런 상황을 놓고 보면 다윗 혈통에 모압인이 있다는 것은 느헤미야를 위시한 현실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룻기의 저술 시점은 일단 [[에즈라]]/[[느헤미야]]가 작성된 시점보다 뒤[* 기원전 5세기 중반쯤 이민족과 결혼한 유태인들을 모두 이혼시키고 이민족 여인들과 그 자손들을 내쫓은 적이 있다. 성경 이외에 유대인들의 민간 전승으로도 여러 바리에이션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굳이 그 시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필요는 없고, 타나크 편집 당시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종교적 지도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한 저명성을 획득하려면 오히려 이민족 출신들을 내쫓고 난 직후의 혼란기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쓰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서 외국인과의 결혼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도 있긴 하겠지만[* 원래 이스라엘에서 족보의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아버지가 유대인이어야 하는 조건이었고 이는 예수가 태어날 당시까지 유효했으니, 어머니가 이방인이어도 '신앙의 족보'에 문제가 없다는 홍보 목적이 아예 없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가톨릭 쪽의 일반적인 견해.] [[야훼]]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고취시키고 가나안 정착 초기에 야훼의 법을 잘 지키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교훈적인 의미를 강조하면서 다윗 왕조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던 외부 의견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