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룩셈부르크군 (문단 편집) == 개요 == || [[파일:Hakdangri.jpg|width=300]] || || 룩셈부르크 시티의 로테르담 성당 맞은편에 있는[br]참전기념비에 새겨진 관련 내용. || [[룩셈부르크]]의 군대. 1881년 2월 16일에 창설되었다. [[내륙국]]인 관계로 [[해군]]은 없다. 항공기는 보유하지만 [[공군]]도 없고 [[육군]]만 있다. 900명 수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작은 군대다. [[준군사조직]]인 [[모나코군]], [[스위스 근위대]] 등이 있긴 하지만 정식 군대로는 룩셈부르크군이 가장 작다.[* [[몰타군]]보다도 작다.] 장교와 부사관이 450명에 자원병은 340명 수준에 [[군무원]]이 100명이다. 1967년부터 [[모병제]]를 시행 중이다. 그래도 GDP 만큼은 왠만한 선진국도 못 따라올 정도라서 [[베네룩스]] 3국 내에서 육군에 특화된 [[벨기에군]], 해군에 특화된 [[네덜란드군]]을 경제적으로 보조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공군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양쪽에서 분담하고 있다. [[6.25 전쟁]] 참전국이기도 하다. UN군으로써 1차에 43명, 2차에 46명을 파병했고, 그 중 2명이 전사, 17명이 부상당했다. 총 1개 소대 병력이었고 벨기에군 보병대대에 소속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전투병 파병 국가 중에서는 가장 적은 숫자이지만 군의 규모가 원체 작은 것을 고려하면 룩셈부르크 입장에서는 최대한의 파병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룩셈부르크군 전 병력 중 10%를 파병했기에 비율로 따지면 UN 파병국 중 가장 높다. 또한 파병한 병력 중 사상자 비율도 1/3 이상으로 UN 파병국 중 가장 높았다. 참전 초기에는 벨기에군과 같이 미 육군 제3사단에 배속이 되었다가 얼마 후 영연방 제29여단으로 배속이 되어 금굴산 전투, 학당리 전투를 포함한 [[임진강 전투]]에 참여하였다. 학당리 전투 이후 룩셈부르크군은 한국에서 철수했지만, 일부 군인들은 [[벨기에군]] 소속으로 남아 전투에 임했다. [clearfix]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