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힝야 (문단 편집) == 기원 == 로힝야는 1799년 프랜시스 뷰캐넌해밀턴(Francis Buchanan-Hamilton)의 저서에 루잉아(rooinga)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로힝야의 기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아라칸 왕국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미얀마]]로 들어온 [[무슬림]] [[아랍인]] 선원들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으나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14세기]] 무슬림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의 기록과 대조해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맞지만 상반되는 내용도 적지 않다. > "우리는 [[정크선]]을 타고 15일간 항해한 끝에 바라흐나카르[* al-Barahnakar 미얀마 네그라이스(Negrais) 곶 부근의 아라칸 지방으로 비정됨] 지방에 도착하였다. 이곳 사람들의 입은 흡사 개의 입같이 생겼다. 그들은 미개인으로서 [[힌두교]]건 다른 어떠한 종교건 믿지 않으며 해변가에 갈대를 세우고 풀로 이엉을 얹은 집에서 살고 있다. 남자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벌거숭이다. 그러나 간혹 한두 사람은 [[음경]]과 [[고환]]을 감싼 갈대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있다. 그들과 함께 '''[[벵골]]이나 [[자바]]에서 온''' 일군의 무슬림들이 특정 구역에 살고 있다." 외모가 아랍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방글라데시인]]이다. 아라칸 지역에 소수의 [[파르시]]나 무슬림이 전근대부터 소수 방문하거나 거주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대다수 로힝야의 선조는 영국의 미얀마 진출과 함께 벵골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벵골과 미얀마 모두 대영제국에 의해 같은 "[[인도 제국]]" 영토로 지배받았다.] 영국의 [[http://www.networkmyanmar.org/ESW/Files/Akyab-Gazetteer-Volume-A-1917.pdf|기록]]에 따르면 1872년 기준으로 5만 8천 명이던 무슬림의 수는 1911년에 3배 이상 증가했다. 다만 이 숫자 대부분은 일감을 따라 벵골과 미얀마를 오가는 사람들로 기록에서는 이들을 거주민으로 보지 않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이후에도 1970년대까지 당시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으로부터 미얀마로 벵골족의 이주가 계속되었다. (1차 엑소더스) 1990년대 초반에 다시 미얀마로 25만여 명에 이르는 2차 엑소더스가 있었다. 현재 로힝야족의 인구는 약 250만 명으로 추정된다. 후술할 내용대로 로힝야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아랍 문자]] 내지는 아랍 문자에서 파생된 하니피 로힝야 문자로 표기하긴 하지만 이는 과거에 로힝야족이 [[인도 제국|영국 치하]]에서 서면 통신을 할 때 [[우르두어]]를 썼던 것의 영향이지, 아랍권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미얀마로 들어온 중동계·중앙아시아계 무슬림의 후손들은 미얀마 현지에 동화되어 [[상좌부 불교]] 신자가 되었든, 종교만큼은 그대로 이슬람교이든 간에 [[후이족#판사이|인종적으로는 황인화된]] 상태다.[* 이 말고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의 중동계·중앙아시아계 무슬림 이주민들의 후손들 역시 오랜 혼혈화로 현지 말레이인이나 자바인 등 현지 주류 민족들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을 정도로 동화되고 혼혈화되었다. 설령 로힝야족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진짜 아랍계 후손이라고 해도 이미 언어·문화적으로 벵골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당장 옛 무굴 제국 북부 지역이었던 북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 남아있는 무굴 제국 튀르크인·페르시아인 지배층의 후손들도 언어·문화·인종적으로는 현지 토착민에 거의 동화되어 이슬람교 신앙만 겨우 지켜낸 상황이다.] 또한 전근대 미얀마는 생산성이 매우 낮은 낙후된 지역이었으며 주요 도시들도 해안 지대보다는 내륙에 위치한 상황이었다. 로힝야족, [[로힝야어]]라는 별개의 명칭을 통해[* 문자 또한 아랍 문자 및 아랍 문자에서 파생된 하니피 로힝야 문자이다 보니 입으로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문자만 봐서는 로힝야어가 벵골어와 별개의 언어로 느껴지기 쉽다. [[인도아리아어군]]에 속하는 다른 언어들 중에도 [[힌디어]]와 [[우르두어]], 인도 [[펀자브어]]와 파키스탄 펀자브어의 경우처럼 비슷한 케이스가 존재하는데, 여기서 예시한 사례들은 모두 후자의 문자가 아랍 문자다.] 전혀 다른 혈통과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보이게끔 하고 있지만, 이는 일개 모험가의 일대기에 나온 단어를 토대로 20세기 초 로힝야족이 자신들에 대한 민족주의를 대두시키면서 발굴한 단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항상 벵골족이라 불렸으며 [[치타공]]인이라고도 불렸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는 확연한 [[벵골인]][* [[미얀마인]] 문서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햇볕에 타서 그렇지 인종적으로도 전형적인 몽골리안이라 흑발, 직모, 피부색, 이목구비 등으로 다른 동남아 국가의 인종과 구분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 해도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벵골인]]은 [[흑백혼혈]](정확히는 [[코카소이드]]와 [[오스트랄로이드]] 혼혈)이라 곱슬, 피부색, 안와상융기 등 생김새부터가 달라서 구분을 못하는 게 이상한 수준이다.]에, 언어도 [[벵골어]]의 남부 방언인 치타공어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동남아시아 계통의 미얀마인과, 인도 계통의 벵골인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뚜렷하다. 로힝야어라고 명명은 해주지만, 실상은 치타공어와 단어 몇 개, 그리고 사용하는 문자가 다른 수준일 뿐 억양마저 동일하다. 그나마 표준 벵골어와는 같은 벵골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다르지만 이는 로힝야어와 방글라데시 치타공어 모두 해당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한 비교다. 당연히 미얀마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서, 미얀마인과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미얀마에 3세대, 100년이 넘는 기간이나 살면서 로힝야어와 치타공어가 차이가 없고, 미얀마어와 기초적인 의사소통도 안 되는 것은 미얀마 정부의 책임이 큰데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고 교육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미얀마어를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다보니, 로힝야족의 입장에서 배워야 할 필요도 없어 로힝야족이 독자 언어로 토착화가 이루어질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르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언어의 변화는 보수적이고 불과 수십 년의 단절만으로는 언어가 고유 언어가 될 만큼 바뀌지는 않는다. 만약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에게 미얀마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쳤다면 로힝야어는 미얀마어 차용어가 유입되어 치타공어 및 표준 벵골어와는 더욱 많은 차이가 생겨났을 것이다. 언론 기사에서 종종 다루는 바와 같이, 로힝야 난민과 방글라데시의 사람들은 입으로는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허나 서로 간에 필담은 불가능한데, 방글라데시에서 벵골어를 [[동부 나가리 문자]]로 표기하는 반면 로힝야족은 자신들의 언어를 [[아랍 문자]]나 하니피 로힝야 문자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이는 [[몽골어]]([[몽골 문자]], [[키릴 문자]]), [[타타르어]](아랍 문자, [[라틴 문자]], 키릴 문자), [[세르보크로아트어]](라틴 문자, 키릴 문자) 등 국가에 따라 다른 문자로 표기되는 언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로힝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이 부분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로힝야는 혼혈되지도 않은 벵골인이고, 억양마저 똑같은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을 각국 언론이 잘 보도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가 난민 캠프의 출입을 차단해도 로힝야가 도시로 몰래 들어가서 취직해서 일하고 섞이는 것을 방글라데시 경찰이 단속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계속 살아온 치타공인과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족을 구별하려면 글을 써보라고 하면 되지만(치타공어/로힝야어를 동부 나가리 문자로 표기하면 방글라데시 치타공인, 아랍 문자나 하니피 로힝야 문자로 표기하면 로힝야족), 이런 방식의 단속을 일일이 하는 것도 큰 어려움과 번거로움이 따른다. 따라서 본인이 방글라데시 치타공인인지 로힝야족인지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는 한 사실상 난민 캠프를 몰래 탈출한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 사회에 동화되도록 놔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힝야족의 전통음악과 전통춤 또한 방글라데시나 인도 서벵골 주의 것과 큰 차이가 없으며, 특히 방글라데시 본토 치타공인들의 전통음악과 전통춤이 로힝야족의 것과 매우 똑같다. 로힝야족 자신들이 조상들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아랍권의 전통음악·전통춤과 비교하면 이질감이 매우 심하다. 다시 말해 로힝야나 로힝야어라는 단어는 인류학, 문화학, 언어학적인 학문적 의미를 가진 단어라기보다는 근래에 생긴 정치적인 단어이고, 그렇기에 미얀마인들은 '로힝야'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한다. 미얀마인들은 로힝야인, 로힝야어를 부정하고 일관되게 벵골인, 벵골어로 칭한다. 그러나 정작 방글라데시나 인도의 벵골인들은 로힝야족을 같은 벵골인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으니 로힝야족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인 셈이다. 물론 반대로 방글라데시나 인도의 벵골인들을 자신들과 같은 민족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로힝야족들 또한 적지 않은 편이다. 로힝야족들이 공식적으로 자신들이 벵골인의 지파임을 인정하면, 이들이 스스로를 아랍계 후손으로 여기는 이상 로힝야 민족주의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는 꼴이 되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해외의 로힝야족 공동체는 일반적인 벵골인 공동체(인도계나 방글라데시계)와 철저히 거리를 두는 경향이 강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