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퀴엠(모차르트) (문단 편집) === 모차르트 사후부터 쥐스마이어판 완성까지 === 모차르트 사후에도 그의 부인 콘스탄체는 이 곡을 완성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노력했다. 이 곡의 완성에 거액의 계약금이 걸려 있었기 때문. 그러나 제안을 받은 작곡가들은 대부분 부담감 등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제자 가운데 높이 평가했다는 아이블러도 완성하려고 시도했으나 거의 손을 못대고[* 현재 쥐스마이어판의 두 마디는 아이블러가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포기했고, 결국 모차르트의 다른 제자 중 한 사람인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 1766 ~ 1803)가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현재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판본(쥐스마이어판)을 기준으로 볼 때, 상투스, 베네딕투스는 100% 쥐스마이어의 창작이며[* 모차르트의 과거 작품을 참고 했다는 주장도 있다.], 라크리모사는 처음 여덟마디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쥐스마이어가 작곡하여 완성시켰다. 라크리모사는 원래 모차르트가 아멘 푸가로 마무리하려했다고 하는 설이 있지만, 훨씬 이전에 작곡된 자비송 를 미사로 작곡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악장으로 포함시킬 의도로 작곡한것 일수도 있다는 등, 논란이 있다. 아멘 푸가는 1960년 베를린 주립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는데, 일부분만 발견되었고, 레퀴엠의 Rex Traemendae와 동시기 작곡한 [[마술피리]] 서곡 일부와 묶여 있었다. 따라서 아멘 푸가는 편집자마다 4마디 이후 부분 전개가 달라진다. Lux Aeterna 부분은 Introitus의 뒷부분과 Kyrie를 합친 것과 가사만 다른데, 이 역시 쥐스마이어가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처리를 한 것인지, 모차르트가 생전에 유언으로 남긴 부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레퀴엠의 전 악장은 루터교 찬송가 <내 최후의 순간이 올때>의 모티브 음형 "D-C#-D-E-F"를 인용하고 있는데, 임종 자리에서 모차르트가 악보를 넘겨보며 울면서 '내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라고 했었지'라고 되뇌었다는 주위 사람들의 증언도 고려해볼때 그가 실제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작곡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모차르트가 남긴 아멘 푸가 스케치를 토대로 판본을 완성한 로버트 레빈은, 아멘 푸가 스케치가 레퀴엠의 Rex Tremendae 스케치와 함께 발견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멘 푸가 스케치에서 모차르트가 "D-C#-D-E-F" 모티브 음형을 전위(inversion)시켜 응용하였다는 점을 들어 분명 모차르트가 레퀴엠에 포함시킬 의도로 작곡한 악장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레빈은 Sequentia 마지막에 아멘 푸가를 삽입하게 되면 각 Introitus - Kyrie / Sequentia - Amen / Offertory - Quam olim Abrahae 각 악장 묶음들을 푸가로 마무리 짓는 자연스러운 미사 형태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칼 가이링거의 주장에 따르면 쥐스마이어가 모차르트의 잘츠부르크 시절 미사곡들을 참고하여 최대한 모차르트 스타일을 살려가며 레퀴엠의 나머지 악장들을 완성하였다는데, 레퀴엠의 Agnus Dei 부분과 미사 브레비스 C장조 "참새미사" 의 [[https://youtu.be/HlEHTy8_2qE?t=174|Gloria]] 부분과 흡사하고 레퀴엠 Lacrimosa의 나머지 부분과 참새미사의 [[https://youtu.be/HlEHTy8_2qE?t=368|Credo]]과 흡사한걸 고려할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현대에는 쥐스마이어가 레퀴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모차르트의 이전 미사곡들을 깊이 연구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작곡가나 음악학자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부 학자들은 모차르트가 아직 총보에 적지 않고 별도의 오선지에 남긴 스케치들을 모차르트 사후 콘스탄체가 모두 모아서 쥐스마이어에게 전달했고 이를 쥐스마이어가 참고했으리라 추정한다. 참고로 Tuba Mirum 부분에 대한 논란도 있다. 당초에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1800년 쥐스마이어의 악보를 출판했을 때, 트럼본의 첫번째 팡파레 이후에는 바순이 이어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당대에는 이를 트럼본 파트를 잘못 기보한 것으로 보고 모든 부분을 트럼본이 연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쥐스마이어가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니라면 성악이 나오는 이후에는 음색이 더 부드럽고 음량도 더 작은 바순이 적합했다고 여겼을 것이라 추측된다. 스즈키판을 사용한 마사아토 스즈키의 연주에서 부록으로 삽입되어 있다. 이렇게 쥐스마이어는 모차르트가 서거한 이듬해인 1792년 레퀴엠의 미완성 부분을 완성[* 아이블러가 작곡한 두 마디 포함]했고, 완성된 작품은 콘스탄체에 의해 의뢰인인 발제크 백작에게 전달되어 1793년 "발제크 백작" 작곡의 레퀴엠으로 초연되었다. 하지만 이미 [[빈(오스트리아)|빈]] 사람들은 이 곡이 실제로는 모차르트 작곡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고, 이렇게 지금도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전해 내려오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