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콩키스타 (문단 편집) ==== 톨레도 함락 ([[1085년]]) ==== 톨레도 함락은 레콩키스타 가속화의 분수령이 되었다. 1085년 레온-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왕인 [[알폰소 6세]]에 의해 톨레도가 함락된 것은 1061년 코임브라 재정복이 포르투갈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 된 것처럼[* 물론 포르투갈이 레온-카스티야에서 분리된 것은 12세기 일이지만, 분리가 가능했던 것도 영토 기반이 있어서였다.] 스페인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이었다. 톨레도는 로마 시절부터 톨레툼이란 이름으로,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였으며 천혜의 자연 요새로 인해 이베리아 중부 고원 메세타의 최고 핵심 전략 거점이었기 때문에 이 도시가 [[카스티야]]에게 넘어간 건 기독교 세력의 진출에 분수령이 되었다. 사상적으로 또한 톨레도 함락과 함께 거의 같은 시기 [[십자군 전쟁]]이 선포 되면서 11세기는 레콩키스타라는 '''하나의 국가적,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형성'''에 분수령이 된 시대였다. 이전 시대만 하더라도 기독교 국가들의 연속체로서 '서고트 왕국 → 아스투리아스 왕국 → 레온-카스티야 연합 왕국'으로 이어지는 '''중부 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 왕조 국가'''로서 계승성을 표명한 사료는 9세기의 알베다 수도원 연대기(Crónica Albedense)밖에 없었고, 다른 사료들은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기독교의 이베리아 반도 '수복'이란 의식을 딱히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실제 정치판에서 이 시대는 바로 다름 아닌 [[엘 시드]]의 시대. 당장 권력과 이익만 맞아 떨어지면 반도 북부의 기독교 소국들과 분열해가는 알 안달루스의 타이파 세력들이 종교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고 지극히 실리적인 [[https://ko.wikipedia.org/wiki/%ED%98%84%EC%8B%A4%EC%A0%95%EC%B9%98|현실정치]](realpolitik)를 따르던 시대다. 그러나 톨레도가 함락되고 교황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종사하는 건 레반트 성지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세력 다툼에 종교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부여하자 레콩키스타는 기독교 왕국들이 하나의 초월적, 역사적 사명이자 성전으로 인식하는 이데올로기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또한 교황은 기독교 왕국들에게 레콩키스타가 곧 십자군 전쟁이므로 군인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톨레도 함락 이후 약 반 세기 뒤 쓰여진 [[알폰소 7세]] 시절 쓰여진 황제 알폰소 연대기(Chronica Adefonsi imperatoris)를 기점으로 이 이후 연대기와 사료들은 강렬한 종교적, 지정학적 성격을 띄게 되며 무엇보다 레온-카스티야 연합 왕국을 중심으로 '''국체의 기원을 아스투리아스를 넘어 서고트 왕국에서 찾으며''' 단순한 종교적,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한때 기독교 세계에 속했던 고토의 회복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흔히 불가분의 관계로 말하는 스페인 국가적 민족주의와 전투적 가톨릭 신앙의 일치화가 이데올로기로서 뿌리를 잡게 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