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콩키스타 (문단 편집) === [[스페인 제국]] 정복과의 연관성 === [[콩키스타도르]]와 레콩키스타는 그 어원을 봤을 때 실제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 두 단어의 어원 자체는 스페인어로 '정복하다'를 뜻하는 '''conquistar'''(콩키스타르)에서 같이 유래한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레콩키스타가 끝나면서부터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콩키스타도르]]가 나타난 것도. 단적으로 레콩키스타 당시 그리스도교 국가들, 특히 레온-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수호 성인이자 주된 공경 대상이었던 붉은 칼십자가가 새겨진 백색 망토를 두르고 무어인을 짓밟는 기사로 표현된 성 [[대 야고보|야고보]](산티아고)의 형상, 즉 무어인 처단자 성 야고보(Santiago Mataomoros)의 신앙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콩키스타도르들 사이에서 똑같은 기믹에 대상만 바뀐 인디오 처단자 성 야고보(Santiago Mataindios)란 형상으로 숭배받았다. 또한 레콩키스타 종결 직후부터 열린 바닷길로 인해 스페인인들이 아시아 지역으로도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스페인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인 가톨릭을 아시아에도 전파하고자 시도했다. 훗날 [[카쿠레키리시탄]]이 되는 [[센고쿠 시대]] 일본 가톨릭의 시작, 그리고 [[명나라]]와 깊게 연관을 맺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레콩키스타의 여파는 동북아시아에도 상당히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 선교사들은 전국시대 일본 다이묘들 중 [[고니시 유키나가]]와 같은 이들을 지원하며 일본 또한 장기적으로 가톨릭화하려고 하였다. 중국에서도 [[명나라]] 조정과 조력하며 선교를 시도했다. 심지어 [[조선]]과도 일부 연관이 있는데 스페인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임진왜란]]마저도 조선, 나아가 중국을 가톨릭화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일본의 침략에 조력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의 주력을 구성하던 서부 일본 다이묘들 중 일부는 [[가톨릭]] 신자였고 선교사들은 그들을 지원하면서 조선에 따라 들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쟁이 조선의 승리로 끝나면서 스페인-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생각한 '극동의 콩키스타'는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가톨릭화 또한, 스페인인들과 가톨릭 다이묘들의 [[노예무역]]에 충격을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에도 막부]]가 제동을 걸면서 중단되었다. 근대 들어 스페인 [[극우]] 일각에선 [[스페인 내전]] 당시 이를 또 빨갱이 처단자 성 야고보(Santiago Matarojos)로 기믹을 또 바꿔 푸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안 그래도 반프랑코 진영에서 열렬하게 띄운 가톨릭 스페인을 수호하겠다고 내전을 일으킨 자들이 바로 그 북아프리카 무어인 용병들을 끌고 와 스페인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죽였기 때문에 선전 메세지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게 됐는데 저건 프랑코파 본인들이 생각해도 너무 오바다 싶었는지 조용히 묻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