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콩키스타 (문단 편집) == 결과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a_Rendici%C3%B3n_de_Granada_-_Pradilla.jpg|uselang=ru]] 결국 무어인들은 베르베르인에게 남쪽에서 털리고 북쪽에서 기독교도들에게 털리는 양상의 반복 끝에 축출되고 말았는데, 무어인들은 기독교 왕국의 위협에 대항하여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왕조]] 등을 세운 베르베르인들에게 같은 이슬람 형제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오히려 베르베르인에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알안달루스의 무어인에 비해 종교적으로 엄격했던 베르베르인들은 무어인들이 이룩한 문화재를 훼손하였으며, 무와히드 왕조가 기독교 왕국에게 참패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중단되었으나 레콩키스타를 저지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인구에서도 여전히 기독교 왕국한테 열세였다. 결국 알안달루스의 이슬람 왕국들은 차례차례 기독교도 왕국들에 정복당했고 1492년 1월 2일에 [[나스르 왕조|그라나다]]의 무함마드 12세가 이사벨 1세(카스티야), 페르난도 5세(아라곤)에게 항복하여 나스르 왕조가 멸망하면서 레콩키스타가 마무리되었다. 위의 그림은 그라나다를 떠나 모로코로 [[망명]]하는 무함마드 12세와 그 휘하의 이슬람 교도들을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5세]]가 불러세워서 함께 살아갈 것을 권유하는 장면이다. 무함마드 12세는 이를 거부하고 [[아프리카]]로 물러났다.[* 나중에 스페인 내 비기독교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생각하면 이게 옳은 결정이었다. 무함마드 12세는 스페인을 떠나기 전 페르난도 & 이사벨 부부와 조약을 맺어 그라나다를 내어주는 조건으로 그라나다의 무슬림의 스페인 잔류 및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아 그라나다의 무슬림들에게 마지막 보호막을 세워주고 떠났으나 몇 년 안 가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조약은 무효화되고 반란 진압 이후 그라나다의 무슬림들은 전부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다.][* 그나마 그라나다가 마지막 무어인 왕조였기에 멸망 후 잠시나마 대접을 받은 것이지, 그라나다 이전에 정복당한 무슬림들은 얄짤없이 강제 개종 아님 추방 작업을 거쳐야 했다. 당장 이사벨과 페르난도 또한 가톨릭 원리주의자로 레콩키스타 완료 직후 악명높은 종교재판을 처음 시작한 자들이었다.] 레콩키스타는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십자군 전쟁]]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당시에는 십자군의 일부로 인식되었으며 교황도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왕국들은 동방으로 가는 십자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실제로 '''2차 십자군'''이 '[[지나가던]] 길에' 이슬람 세력의 거점이었던 리스본을 함락시키고 가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