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콩키스타 (문단 편집) == 배경: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 == 이베리아 전역을 지배하던 [[서고트 왕국]]은 내분을 틈탄 [[무어인]]의 침공을 받아 무너진다. 당시 서고트 왕국은 [[서고트 왕국]] 문서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복잡한 정치 체계 때분에 내분이 잦았고, 많은 외적과 싸우느라 힘이 소모된 상태였다. 게다가 내전으로 인해 무어의 편을 든 '''배신자''' 귀족들이 있었고, '''[[기병]]이 너무 적었고''', '''[[해군]]이 전무해서''' 북아프리카의 [[무슬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끝내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내몰릴 지경까지 간다. 무어의 본거지였던 북아프리카는 로마 이전 시절부터 이름 높은 말의 산지였다. 반면 이베리아는 국토 대부분이 고원 지대라 기병을 키우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해군의 육성은 안정적으로 국경을 방어할 규모의 육군이 갖춰진 다음에야 이루어진다. 당시 여러 외적과의 전쟁과 내전으로 육군의 소모가 심했던 서고트는 해군까지 육성할 여력이 없었다. 반면 무어는 해군, 정확히는 [[해적]]이 강했는데, 로마 제국 시절 곡창지대였던 북아프리카를 점령한 [[베르베르인]]들과 [[아랍인]]들은 11세기 전까지는 관개 수로를 잘 사용하지 못해 농업 기반이 열악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바다로 나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가까이 있던 스페인 동남부 해안에 대한 해적질도 그중 하나로, 이러한 해적 행위 자체가 이후 국가 기간 산업 중 하나로 발전하기까지 한다. 한편 [[이베리아]]를 [[이슬람 제국]]이 점령한 이후 이 동남부 해안에 대한 해적질은 금지되는데, 이는 동남부의 영주들인 [[아랍인]]들과 해적질을 하던 [[베르베르인]]들 간의 갈등의 또다른 원인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