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슬링 (문단 편집) === 고대 레슬링 === [[파일:external/www.tigonsports.com/Wrestling%20-%20ancient.jpg|width=400]] 고대 그리스어: πάλη(팔레)[* 레슬링 학교를 'παλαίστρα'(팔라이스트라)라고 하였다. 동양의 '[[도장#s-2|道場]]'과 마찬가지인 셈이라 박종현 교수의 [[플라톤]] 번역을 보면 실제로 '도장'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오늘날 체육관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palestra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래플링]]으로 승부를 겨루는 경기의 역사 자체는 상당히 오래되어서, 고대의 [[이집트 문명]]이나 [[인더스 문명]]에도 존재했었다. 다만 이것이 실용적인 전투 무술로 발전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시기다. 철기가 널리 보급되고, 시민 계급으로 구성된 중장보병이 방진을 짜서 전투를 치르는 시대가 되자 전장에서 중무장한 상대에게 입식타격은 의미가 없으니 [[그래플링|상대방을 쓰러뜨려서 제압하고]] [[서브미션|살상하는 기술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 제전]]([[고대 올림픽]])에서 겨뤘던 종목들이 으레 그랬듯이 레슬링 또한 실제 전쟁에서 사용하는 무술이라서 채택된 것이었다. 이 레슬링은 같은 맥락에서 나중에 [[로마 제국]]의 군단병들도 필수적으로 훈련하게 된다. 군인 황제 시대를 연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황제도 제국군 레슬링 챔피언 겸 교관 출신이었다. [[파일:external/www.ostia-antica.org/5-15_18.jpg]] [[파일:external/www.ostia-antica.org/5-15_19.jpg]] 로마 레슬링 조각상. 위는 최초 발견 부, 밑은 재연품이다. 재연품은 자세가 조금 엉성하다. [[어깨로 메치기|메어넘기기]]를[* 유도의 어깨로 메치기와 동일한 기술이지만, 레슬링에선 '메어넘기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05c7cf771bf2fe0bca525ae43ee8d9b.jpg]] 그리스 도자기 속 레슬링. 고대 그리스의 레슬링 선수들은 옷을 입지 않은 채 몸에 올리브 기름을 바르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나체로 경기를 한 것이야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올리브 기름을 발랐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한데, 그 중엔 몸의 냄새를 감추려는 사냥 관습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 터키의 야울 귀레쉬란 전통 레슬링은 오늘날까지도 몸에 오일을 바른 채로 경기를 진행한다.] 당연히 몸에 기름을 바르면 몸이 매우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기술을 걸기는 훨씬 더 어려워 진다. 고대 그리스의 레슬링은 크게 2가지 종목으로 나뉘었는데,'모래밭에서 경기하는 '''업라이트 레슬링'''과 진흙밭에서 경기하는 '''그라운드 레슬링'''이 그것이었다. 물론 종목과 상관없이 서로 주먹으로 때리거나, 경기장을 벗어나거나, [[로우 블로|성기를 붙잡거나 가격하는 행위]][* 나체로 경기했으므로 충분히 가능했다.(...)] 등은 모두 금지되었다. 애초에 전장에서 갑옷으로 중무장한 상대를 제압하는 격투술에서 시작한 것이므로 주먹으로 때리거나, 전장을 벗어나는 여유를 부리거나, 성기를 붙잡거나 가격하는 행위 등은 실제 전투 시엔 적용될 수 없으므로 규칙에서 빠지는 게 당연했다. 단, 체급 제한이나 시간 제한 같은 규칙은 없었다.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할 때는 5쌍에서 8쌍의 팀으로 경기를 했고, 도자기 항아리에 제비를 넣고 뽑아서 추첨으로 상대를 정했다고 한다. 업라이트 레슬링에선 상대를 3번 바닥에 메쳐야(깨끗하게 폴을 따내야) 승리할 수 있었다. 상대와 동시에 땅에 떨어졌을 경우에는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업라이트 레슬링은 상체만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했으므로 오늘날의 그레코로만형(Greco-Roman Style) 레슬링과 그 룰이 유사하다. '''그라운드 레슬링에선 하체를 공격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이 점에선 오늘날의 자유형(Freestyle) 레슬링과 그 룰이 유사하다. 다른 점이라면 자유형 레슬링과는 달리 손가락 꺾기나 목 조르기가 반칙이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는 점 정도다. 레슬링은 [[복싱]]과 함께 '''고대 올림픽의 양대 종목'''이었으며, 둘이 합쳐 [[팡크라티온]]이라는 고대의 [[종합격투기]] 비스무리한 종목도 탄생한 바 있다. 또한 레슬링은 [[달리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등과 함께 고대 올림픽의 5종 경기 중 하나였을 정도로 고대 올림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신체 단련에 무척 신경을 쓰는 편이었는데, 정황상 레슬링을 수련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레슬링과 신체단련을 동일시한다.] >그는 신체단련에도 신경을 썼으며,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 이를테면 그는 암피폴리스로 원정을 가서 델리온 전투에서 크세노폰이 말에서 떨어졌을 때 그를 부축해 구해 주었다. 그리고 아테네인들이 모두 패주할 때 그는 누가 자신을 공격하면 방어할 수 있도록 후방을 경계하면서 조용히 퇴각했다. 그는 포티다이아에도 원정을 갔다. 바닷길로 갔는데, 전쟁 때문에 길이 막혀 육로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용기로 포상을 받았다. > >... 그는 자립적인 사람이었고 위엄있었다. ... 그는 생활방식이 매우 절도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인들 사이에 종종 역병이 발생했을 때도 그 혼자만 역병을 겪지 않았다.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2 ''Διογένης Λαέρτιος''}}},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2 ''Βίοι κα γνμαι τν ν φιλοσοφί εδοκιμησάντων''}}} II,22-25., 김주일 등 공역, 나남, 2021 [[플라톤]]도 레슬링을 수련하였으며, 심지어 '플라톤'이라는 이름부터가 우월한 피지컬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플라톤은 자신이 《연적들》에서 언급하기도 한 디오뉘시오스에게서 글을 배웠다. 한편 그는 아르고스 출신 레슬링 선수인 아리스톤에게서 체육 교육을 받았다. 체격이 좋다고 해서 그에게서 플라톤이라는 이름도 새로 얻었으며, 그전에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리스토클레스{{{-2 ''ριστοκλς''}}}라고 불렸다고 알렉산드로스는 《철학자들의 계보》에서 말한다.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2 ''Διογένης Λαέρτιος''}}},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2 ''Βίοι κα γνμαι τν ν φιλοσοφί εδοκιμησάντων''}}} III,4., 김주일 등 공역, 나남, 2021 참고로 다음 세대에서는 권투 선수 클레안테스{{{-2 ''Κλεάνθης''}}}가 [[스토아 학파]]의 2대 [[장문인]]이 되면서 무투파 철학자(...)의 계보를 잇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