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바논/역사 (문단 편집) === 레바논 내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레바논 내전)] 팔레스타인 난민촌과 마론파 기독교인 거주지가 각각 잿더미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경찰은 종파간 갈등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채 무력화되었다. 또한 수도인 베이루트는 금융허브라는 명성을 잃고 테러와 범죄가 횡행하는 [[분단 도시]]라는 오명만 남게 되고 말았다. 드루즈파들은 원래 마론파와는 큰 적대관계를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신도가 팔랑헤에게 살해당하는 상황이 오면서 마론파와 앙숙이 된다. PLO에게 열세에 놓인 레바논 정부군은 시리아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시리아는 레바논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레바논에 파병하였다. 시리아는 범아랍주의를 표방하고 있던 나라였음에도 범아랍주의를 지향하던 단체들을 적대하였다. 결국 시리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우위를 차지하면서 일시적으로 평화가 오는듯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었고 마론파가 배신하면서 내전은 다시 활발해졌다. 한편 시리아가 내전에 참전하자 불안해진 이스라엘도 내전에 개입하였고, 레바논 내전은 사실상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대리전으로 변모하였다. 이를 중재하기 위해 UN 평화유지군이 레바논으로 파병되었지만 내전 종식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이후 미국이 기독교-우파를 지지하고 소련이 이슬람-좌파 민병대를 지지하는 양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에 이슬람 종파 내에서도 좌우간의 갈등은 심해지고 기독교 종파에서도 마론파와 시리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정교회간에 전투도 벌어지는 등 혼란상은 극심해져 갔다. 그러다가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를 통해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타이프 협약이 체결되었고, 이듬해인 1990년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교도의 국회 의석을 64:64로 균형을 이루는 개정 헌법이 발효되면서 내전도 사실상 끝을 맺어 재건 작업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