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바논/역사 (문단 편집) == [[근대]] == 마론파교도들은 레바논 산맥 남부의 [[드루즈]]들과 크고 작은 국지전을 반복했다. 계속되는 드루즈교도들과 마론파 신도들 간의 다툼에 [[프랑스]]가 개입하여 1861년 자치권을 얻어냈다. 자치권을 얻어낸 이후 레바논인 상당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로 대규모 이민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아직 레바논이 명목상이나마 오스만 제국 영토였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로 이주한 [[레바논인]]들은 오스만 제국 여권을 들고 이주해야 했고, 이러한 연유로 이들은 이민간 현지에서 투르코(Turco)라고 불렸다. [[마론파]]와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가 라틴 아메리카 각지에 세워졌다. 드루즈교도들도 대규모 이민 행렬에 동참하였지만 교리가 경전보다는 구전으로 전승이 되는 드루즈교 교리 특성상 많은 드루즈교도들이 이민 이후 종교 생활과 단절되고 결국 얼마안가 현지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다. [[파일:external/web.stanford.edu/fig14.jpg]] 붉은 선 안이 원래의 레바논 영역. || ||||'''[[1913년]] '''[[https://books.google.co.kr/books?id=lCE4AAAAIAAJ&pg=PA29&redir_esc=y#v=onepage&q&f=false|#]] ||||'''[[1932년]] '''[[https://books.google.co.kr/books?id=zRwOcE9wJAQC&pg=PA120&lpg=PA120&dq=1932+Lebanese+census+875,252&source=bl&ots=d4e4tBGuup&sig=_3pYZRN_UXOJnnHHgeo_aF-EuuI&hl=ko&sa=X&ved=0ahUKEwj5lLub9p_QAhWBf7wKHW3aD8gQ6AEIOTAE#v=onepage&q=1932%20Lebanese%20census%20875%2C252&f=false|#]] || ||[[마론파]] ||242,308 ||58.3% ||270,938 ||31.0% ||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31,936 ||7.7% ||55,754 ||6.4% || ||[[정교회]] ||52,536 ||12.8% ||93,781 ||10.7% || ||기타 기독교 종파 포함 전체 기독교||329,482 ||79.4% ||458,987 ||52.4% || ||[[수니파]] ||14,529 ||3.6% ||181,842 ||20.8% || ||[[시아파]] ||23,413 ||5.5% ||159,782 ||18.3% || ||[[드루즈교]] ||47,290 ||11.3% ||56,584 ||6.5% || ||기타 이슬람 종파+드루즈 ||85,232 ||20.6% ||341,624 ||39.0% || ||전체 인구 ||||414,747 ||||875,252 ||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하자 프랑스 제3공화국은 [[시리아]]와 함께 이곳을 위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이 때 레바논과 근접한 시리아의 내륙 영토들 중 일부가 레바논으로 편입되면서 기독교인이 다수지만 무슬림들의 비중도 상당해졌다.[* 덕분에 시리아에서도 역사적/지리적으로 원래 시리아 영토였다고 주장하며 레바논을 상대로 영토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프랑스에서 레바논의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저해하기 위함이었고, 실제로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원래부터 레바논이었던 지역에서 많이 살던 마론파 교인들은 소 레바논주의를 주장한 반면에 타 기독교 종파와 드루즈파,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계열은 [[아랍 민족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대 레바논주의를 주장했다. 이 갈등은 1943년 국민협정으로 다수의 마론파 기독교도가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수니파와 시아파 등의 종파들이 각각 국무총리와 국회의장 등의 각료를 나누어 가지는 식으로 권력이 배분되는 형태로 끝났다. 다만 52.4%라는 비율은 기독교도들을 지원해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자 했던 프랑스 위임통치 정부가 1932년 조사 당시 외국에 있는 레바논 기독교도들까지 포함시켜 실상을 조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인구 87만 5252명 중 기독교도가 45만 8987명으로 여타 집단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실상은 기독교도와 무슬림 비율이 같거나 후자가 살짝 우세한 것이었다. 프랑스 당국은 이러한 각색된 결과로 레바논 의회의 의석 배분에 있어 기독교도와 무슬림 비율을 6대 5로 설정하였고, 이는 독립 후에 그대로 적용되어 사실 5보다는 6에 가까웠던 무슬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내전의 씨앗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