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닌주의 (문단 편집) ==== 경험주의 사조에 대한 비판 ==== 중부유럽과 영국의 생물학 발달로 인해 당시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생물학주의'에 기초한 기계론이 유행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도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찰스 다윈의 유전학 이론을 많이 언급하였으며, 진화론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유럽 내 수많은 생물학주의 성향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소박실재론적 해석을 무분별하게 적용하였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철학을 고찰하여 이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먼저,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경험 일원주의를 가장 큰 분량을 할애하여 비판했다. '경험 일원주의'라는 표현은 러시아의 의사이자 볼셰비키 내 전진파(前進派, Вперёд)[* 볼셰비키 내에서 일체의 합법적 활동을 거부하고 지하 활동주의를 내세웠던 급진정파. 후대의 [[좌파공산주의]]와 같은 계열이다.] 경험주의 이론가였던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가 1906년에 쓴 저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레닌은 이 입장을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냈는데, '기계론', '마하주의', '유아론' 등이 그것이다. 경험일원주의 입장은 영국의 [[조지 버클리]]가 시초이며, 프랑스 좌익부르주아 사상의 중심에 서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 및 생물학 분야에서는 [[에른스트 마흐]]와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에 의해 시작됐고, 러시아 내에서는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가 주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입장은 다양한 경험주의, 절충주의적 입장과 불가지론적 전제들과 약간 혼재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보그다노프는 트로츠키 이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다수파의 2인자로써 1900년대 내내 레닌의 오른팔 역할로 급진적 사상을 대변하였다. 나무위키의 레닌 항목에도 보그다노프와 체스를 두는 레닌 사진이 있을 정도로 개인적인 사이도 원만했다. 그러나 이 논쟁 이후 레닌과 보그다노프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라져 보그다노프의 정치적 동지인 고리키는 소련 성립 이후에도 해외를 돌아다녔고, 보그다노프는 죽는 그날까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복당하지 않았다. 이 보그다노프의 제자가 바로 [[니콜라이 부하린]]이다.] 선술된 이론가들에 의하면 감각적으로 인지된 요소는 인지된 대상 물질이 갖는 객관성(즉, [[물자체]])과 완전히 일치하며,[* 이러한 주장은 "원래부터 가시적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물자체'와 '현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 어떠한 정합도, 기초주의적 회의도 또한 필요 없다고 한다, 또 의식 활동의 층위에서 논의되는 시공간은 모두 감각된 것들의 파지에 의한 의식(意識)이 조작해내는 것이며, 객관적인 시공간은 오직 자연과학의 층위에서만 논의되는 시공간 뿐이다. 즉, 의식적 시공간은 모두 감각을 통해 파생되는 부차적 의식의 조작일 뿐이다. 레닌은 이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유적존재(Gattungswesen)로서의 인간'을 완전히 거부하는 주장이므로, 사적유물론에 따른 생산관계의 발전을 통째로 부정하는 논리로 작용된다. 이들은 사회 발전이라는 것도 모두 감각인지에 따라 파생된 행동 에너지의 개연적 증감에 따라 나타날 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이 주장은 기계론적 결정주의로 빠지게 된다고 비판한다. 그는 사회 발전의 일반적 제법칙을 고찰하고, 역사적 보편성의 선형성을 통해 인간의 의식 활동이 단순히 감각인지의 단순 인과론적 조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경험 일원주의자들은 의지 활동이 물질적 측면에서 논의되는 에너지 활동이란 것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감각인지는 그 자체로 물질적 활동이며 시공간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별적 의식과는 독립된 것이기에, 반영주의자들이 말하는 '의식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이러한 경험 일원주의의 틀에 맞추려는 주장에 대해 레닌은 본래 인간의 모든 행동이 감각인지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면, 그 어떤 역사적 법칙도 존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경험 일원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대 논리일 뿐이다. 동시에 이들의 감각주의적 유아론 입장도 철저히 비판했다. 레닌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성숙한 인식을 통해 물자체[* 레닌은 물자체를 하나의 단일 물질에 대한 개별적 인식과 크게 연결하지 않았다. 그는 단일물질에 대한 개별적 인식은 가능하나 그것은 주관적 관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대상성에 기초한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역사의 발전의 선형성과 물질이 갖는 속성을 연구하는 과학적 발전, 이 두 가지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를 알 수 있으며, 그 성숙한 의식은 경험된 '불완전한 인지'를 비판하고 종합하고 회의하여 형성된 것이라 하였다. 이 비판은 바로 변증을 통한 과정이며, 변증이 있는 한 인지되는 감각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것이다. 레닌은 만약 인간이 어떠한 사물을 인지하는 그대로 물자체도 알게 된다면, 과학의 발전 정도는 원시시대부터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계론적 경험주의 비판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의 비판은 경험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으로 되기 어려우며, 그의 논리에도 몇 가지 허점이 보인다. 예를 들어 과학 발전의 정도와 그 속도, 그리고 이것을 인간의 인지 문제와 연결하여 설명한 부분에서 레닌은 전거 주장들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공산주의 사상을 기계론과 기술주의(技術主義)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시도로 이해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이 텍스트는 러시아 공산주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 텍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또, 레닌은 내재주의 또는 내재철학의 입장이 [[흄]]의 불가지론적 경험주의 철학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제4장에서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가 이 유형과 어느 정도 관계성(경험일원주의를 기반으로)이 보인다고 지적하였고 이것을 근거로 하여 '마하와 아베나리우스의 전우'(Соратники Маха и Авенариуса)라는 표현을 통해 내재주의 입장은 경험주의 계통 안에 속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입장은 경험주의인 동시에 맹렬한 주관적 관념론 성격을 보이는 것으로서, 반동철학의 대표격으로도 취급하여 '신비주의'(Мистицизм), '신앙주의'(Фидеиз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심리철학자인 윌프리드 셀러스는 이 입장을 '소여의 신화'라고 칭했는데, 현대 심리철학에서 보통 이 용어와 '주관적 관념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레닌이 살았을 당시 이 입장을 추종하던 이론가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인 빌헬름 슈페(Wilhelm Schuppe)가 있었다. 그는 인간이 경험을 통해 물자체를 알아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기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제반물질의 객관적 속성과 '있는 그대로의 물질' 즉, 물자체를 구분하였다. 제반 물질의 물리적 속성을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신이 인간에게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지식 접근에로의 신의 허락'은 각 제반 물질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객관적 감각성을 인간(사고의 주체)의 본유 안에 내재시킨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질적인 양식 때문에 경험(모든 사물을 향한 인지, 감각 등)이 곧 대상물의 물리적 속성을 인식하는 것과 차별성이 없게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경험의 실재성을 주장하면서도 물자체(문화과학의 영역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단초)와 개물의 물리적 속성(자연과학의 영역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단초)을 구분했고,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어떠한 칸트적 아 프리오리(a priori)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 형성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레닌은 이 입장이 유물론적 대상성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동시에, 그것 외부에 능동적으로 실재하는 미지의 신적 관념(신비주의적)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관념론에도 속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물자체와 개물의 물리적 속성을 구분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왜냐하면, [[변증법적 유물론 ]]입장에서 물자체는 물리학적 방식으로 추려낸 개물의 객관적 특성과 이질적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물리학의 발달로 인해 축적되는 물질에 대한 객관적 지식 토대는 물자체를 알아가는 과정과 완전히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레닌은 당시 근대과학의 진보적 추세를 모조리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현실적 기독교주의자'들의 전형적 수사와 내재주의 사상이 전혀 차별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내재주의 주장은 마치 성경의 그것과도 닮아있기에 그 스스로가 갖고 있는 주장을 향한 모든 비판에 대해 순환론적 오류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