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닌주의 (문단 편집) === 전위당 혁명론 === 레닌주의의 핵심이기도 한 부분이자[* 이곳과 여러 다른 온라인 문서들에서 서술된 바와 다르게 룩셈부르크는 전위당의 역할을 인정하고 전위당 조직을 논한다.] 룩셈부르크가 전위당를 비롯한 좌익 공산주의자들과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이라며 가루가 되도록 까인 부분이기도 하다. 스탈린 대에 들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정립되어 전위당 이론이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혁명 이론이 되는 바람에 마르크스주의=폭력혁명(전위당 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전위당 이론은 혁명을 위한 투쟁 방법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다. 레닌은 1902년 소책자 [[http://www.yes24.com/Product/Goods/13231465|『무엇을 할 것인가?』(Что делать?)]]를 통하여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다수[* 즉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을 말한다.]가 갖고 있던 투쟁 방식을 비판하였다. 그는 특히 노동자가 주로 진행하는 임금 투쟁만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임금 투쟁에 의존하는 운동이 결국에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사례와 같이 기회주의 경향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였고 이러한 임금 투쟁이 어떠한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레닌은 임금 투쟁이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효과가 난다고 비판했는데,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와 더불어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주요 이론가들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합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비판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1861년 3월 3일 농노 해방령을 통하여 일부 자본주의적 소유 구조를 도입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봉건적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농노 해방령 이후 노동자의 수는 증가하였고 명목상 노동조합 성립이 합법으로 되었으나, 노동자의 단체 행동권은 사실상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식 합법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의 단체 행동권, 파업권 보장 등과 같은 자유주의 정책이 들어서게 되면 노동자들은 임금 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할 수 있고 그 결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시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제국 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투쟁이 합법적으로 보장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가의 권력이 유지되는 선에서만 허용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단순히 합법적 활동을 모두 부정하는 방법론만으로는 혁명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는 합법의 영역과 비법(非法)의 영역을 나눠놓고, 매 상황에 따라 변칙적으로 이를 적용하여 최대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레닌은 그것의 기반이 정당으로서 의회 내에서 투쟁하는 것보다는, 노동자 하위 조직을 단단히 조직하고 이러한 조직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널리 설파해 노동자의 계급의식화를 강력히 형성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바탕이 되어야 의회 투쟁도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주된 논점이었다. 하지만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가이자 사회민주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실제로 레닌은 베른슈타인을 타협주의자라며 극딜을 퍼부었고, 베른슈타인과 독일 사민당이 1차대전을 러시아 인민들을 차르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 운운하며 찬성하자 결국 완전히 갈라 섰다.] 사회주의자들은 오로지 합법적 임금 투쟁과 의회 활동에 주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흐름은 크게 합법 투쟁을 중점으로 투쟁을 진행하자는 쪽, 그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을 진행하자는 쪽, 두 가지로 나눠졌다. 이중 당연히 투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한 레닌은 위의 책에서 사회주의 혁명가와 일반적인 근로대중을 구분했고, 전자가 후자를 통일적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전위당론’이라고 부른다. 그는 공산주의 운동에서 산업 노동자에 기반한 모든 직업 혁명가들은 스스로의 이상에 따라 [[프티부르주아]]적 편견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에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든 종류의 운동에 참가하는 산업노동자가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생디칼리즘]]과 같은)에 근거한 모든 운동은 실패했다는 점을 들어 노동자 대중의 파편화에 근거한 순수 자발적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심지어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본의 노예 생활을 자처했으며, 당의 지도 없이는 그들이 [[룸펜|룸펜프롤레타리아]] 대열에 설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노동자 대다수가 아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결체가 없는 혁명 행위에서 그들은 공산주의를 멋대로 해석해, 그런 사상 분열이 혁명 행위의 분열로도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렇기에 오히려 대중에게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해서 대중들이 자체적인 혁명이 가능하도록 역량을 키워야 할거 아니냐며 비판했다.] 또, 후일 레닌은 『공산주의 운동에서 ‘좌익’소아병』에서 전위당론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 당 독재인가 아니면 계급 독재인가,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독재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독재인가?”라는 하나의 문제 제기는 이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끝없는 사고의 혼란을 증명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완전히 특별한 무엇인가를 발명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현명해지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당 원칙과 당 규율의 거부는 반혁명주의자들의 주요 정치 체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는 것과 똑같다. 이것은 바로 내버려두면 필연적으로 어떤 프롤레타리아 혁명 운동도 박살내 버릴, 저 소부르주아적 분열과 동요로 귀결되며, 또한 지속성, 통일 및 조직적 행동에 대한 저 소부르주아적 무능으로 귀결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투쟁 속에서 단련된 철의 당 없이, 일정 계급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의 신뢰를 누리는 당 없이, 대중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그것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 없이, 그와 같은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 블라디미르 레닌, 『공산주의 운동에서 ‘좌익’소아병』 레닌의 이런 비판은 당시 러시아 내에서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멘셰비키]]와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서유럽에서 활동하는 [[좌익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었다. 그는 일부 활동성이 높은 노동자, 직업 혁명가, 사회주의 학자들이 전위대를 조직해 다수의 산업 노동자, 농민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레닌은 산업 노동자, 농민과 직업 혁명가 간의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관계를 주장했다. 실제로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으로 이루어진 소수 혁명가가 지휘하는 레닌의 전위대였고, 러시아 제국을 철저히 전복시켰다. 그러나, 전위당론은 주로 아나키스트들과 좌파공산주의자들의 비판 거리가 되었다. 이 전위대 체계론으로 여러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주의 외의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주의를 [[권위주의]]의 일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아나키스트 FAQ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했다. "이 순전한 엘리트주의는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관점을 전면적으로 위배한다. 더욱이 이것은 권력을 지닌 자의 선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기반을 둔 유토피아적 발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