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기온 (문단 편집) === [[로마 왕국|초기]]부터 [[로마 공화국]] 중기까지 === 카밀루스는 [[로마군]]의 중핵인 중장보병대를 3개 대열(Hastati, Principes, Triarii)로 편성하였다. 각 대열은 마니풀루스(Manipulus)로 나뉘어 편성되었다. [[하스타티]]와 [[프린키페스]]는 120명 단위로 총 1200명씩, 최후미이자 예비대인 [[트리아리]]는 60명 단위로 총 600명을 편제하여 1개 군단병력을 3000명 선에서 유지하였고, 양익에는 [[기병]]대 300명을 나누어 배치했다. 군단총원으로 세지않는 [[벨리테스]](Velites)들은 대열 중간에 나뉘어 배치된다. '하스타티(Hastati)'는 주로 전투 경험이 부족한 젋은 신참병, '프린키페스(Principes)'는 전투 경험이 적당히 있고 나이도 장년층인 남자, '트리아리(Triarii)'는 나이가 있고 전투 경험이 많은 남자들로 구성되었다. 신체적으로나 경험을 고려한다면 로마군의 중핵은 프린키페스였다. 이러한 마니풀루스 시스템은 카밀루스가 창안했다고는 하나[* 카밀루스(Marcus Furius Camillus)는 기원전 5세기 말-기원전 4세기 초 로마 병사이자 정치인. 기원전 390년 갈리아인들이 로마를 점령했을 때 크게 활약하였다.] 삼니움 전쟁 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한 병사들의 구분은 주로 무장의 질의 차이가 결정하였으며 이는 그들의 소득수준과 비례하였다. 당시 병사들은 무장을 지급받는 게 아니라 따로 구매해서 써야 했기 때문. 그러나 로마가 팽창할수록 자영농민층이 붕괴하자 중산층이 소멸[* 이는 복합적인 이유인데 복무중에는 농지를 관리할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오면 황폐화된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멀쩡히 유지하더라도 정복지에서 들어온 값싼 농산물에 밀려 제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복무 중 사망이라도 한다면 남은 가족들이 벌어서 살아야 되는데, 성인 남성이 없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대 군인들이 제대 후 겪는 어려움을 이때도 똑같이 겪은 것이다. 로마 자영농은 목돈 벌어 지주가 되든가, 남의 땅 소작농이 되든가로 분할되었다.]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적절한 무장을 갖출 수 있는 병사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즉 나라가 팽창해 인구는 많아졌지만 프린키페스나 트리아리를 구성할 돈좀 있고 병사 노릇까지 할만한 성인 남자의 수는 오히려 줄었다. 또한 로마의 영토가 거대해지자 장기간 원정을 꾸릴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중산층에 해당되는 로마 중보병 구성원들은 장기 원정을 격렬하게 반발했는데, 당연히 원정을 나간 동안 자기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기와 질이 점점 하락하며 기원전 105년 [[킴브리 전쟁#s-4|아루시오 전투]]에서는 군단병 8만 명이 전멸하는, 로마 역사를 통틀어 사상자 숫자가 최악에 달하는 굴욕적인 대패를 당했다. 이는 5만 명 남짓 전사한 [[칸나이 전투]]의 기록을 가볍게 넘었다. 결국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군제개혁의 칼을 빼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