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고 (문단 편집) == 역사 == || [youtube(X1umlz9cRKk)] || [youtube(CP-vbaZmC2s)] || || 단편 애니메이션 The LEGO Story || 세상의 모든 지식 채널의 레고 브랜드 역사 소개 영상 || 이 동영상들은 레고 사에서 레고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단편 애니메이션 The LEGO Story와 목공소부터 시작된 레고 사의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지식 채널의 영상이다. 이 영상들을 한 번 보고 이 문단을 읽어보는 것을 권장한다.[* 자료 출처는 Margret Uhle, Die Lego Story-Der Stein der Weisen, Rowohlt Tb, 2000.(마가렛 울레가 지은 책으로, 국내판으로 '레고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책이다. 현재는 절판되었다.)] || [[파일:attachment/레고/530px-Ole_Godtfred_Kjeld_Oles_60th_birthday.jpg|width=100%]] || [[파일:attachment/레고/IX4kR.jpg|width=100%]] || || 올레의 60세 생일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위가 초대 회장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가운데가 2대 회장인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 아래가 3대 회장인 [[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다. || 오늘날의 레고 시리즈의 발판이 된 최초의 플라스틱 브릭이 포함된 레고 시스템 제품의 박스아트의 모습이다. 참고로 박스 표지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2대 회장인 고트프레드의 자녀들로 남자아이가 3대 회장 켈이다. || 레고 창업자인 올레는 1891년 4월 7일에 [[덴마크]] 필스코프에서 10째로 태어났다. 올레는 1916년에 목공소인 '빌룬 기계목공사'(1895년 설립)를 사들였는데, 집과 목공소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던 이 건물은 1924년 올레의 두 아들들[* 카를 게오르크와 2대 회장 고트프레드다. 훗날 카를 게오르크는 레고 사의 목각 장난감 생산 중단에 반발해서 올레의 4남인 게르하르트와 함께 빌로 픽스(Bilo fix)라는 목각 장난감 회사를 창업했고 나중에 한세 텍(Hanse tec)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이 난로에 불을 피우는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그대로 태워버렸다.[* 불탄 이후 재건한 집은 현재에도 빌룬 시내 중심부에 남아있다.] 올레는 큰 집을 새로 지었지만, 빚을 지게 되었고, 거기에 [[대공황]]의 타격을 입고 1932년에는 폐업 직전까지 몰린다.[*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 1972년까지 레고 사의 800크로네(약 12만원)를 넘는 모든 지출은 회장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1932년]]쯤부터 올레는 [[나무]]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올레가 쉬는 동안 자투리 조각을 깎아 만들었다고도 하고, 폐업 직전까지 몰린 상황에서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한 후에 대규모 작업이 어려워져 작은 장난감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이 장난감은 제법 인기를 끌었고, 이 장난감을 주력 사업으로 삼으며 레고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1934년]]이었다. 원래는 집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상품으로 내걸고 이름을 모집받았지만, 다행히도 이 레드 와인이 어지간히도 맛이 없었던지 아무도 제안을 하지 않아서 결국 올레 자신이 레고라는 이름을 제안해 수상했다.[* 올레가 지은 레고라는 이름은 덴마크어로 잘 놀다라는 의미인 Leg Godt(라이 커트)의 약어였다.] 사업은 순조로웠고, 1939년에는 직원을 10명으로 늘릴 만큼 성장했다. 특히 올레의 3남인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아버지의 이 장난감 사업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기에 10대 시절부터 직접 모델 개발에 참여하곤 했다. 결국 고트프레드는 1950년에 30살의 나이로 상무이사로 취임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에 [[덴마크]]가 항복해서 [[덴마크 보호령|나치군의 아래로 들어가자]], 수입 장난감의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레고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면 좋았겠지만 1942년 3월에 또 불이 났다. 그래도 재건은 빠르게 진행되어 연말에는 이미 560㎡의 새 작업장이 완공되었다. 그리고 1944년에 레고사는 정식 기업으로 등록되었다. 1947년에 레고 사는 [[합성수지]]의 도입을 결정하고 작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구입하는데, 이는 덴마크에서 최초였던 걸로 알려져 있다. 원래 올레는 비싼 영국제 대형 사출 성형기를 구매하려고 했지만 고트프레드가 사정을 한 끝에 작은 것을 구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전해진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출 성형기였어도 해당 사출 성형기를 구매하는데 당시 레고 사의 연수익의 15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인 3만 크로네가 소모되었다고 한다.] 레고 사에서 생산한 최초의 플라스틱 장난감은 금붕어 모양 딸랑이가 되었다. 그 뒤를 이은 제품은 페르구슨 트랙터였다.[* [[https://www.flickr.com/photos/14964802@N07/7952736226/|실제 제품의 모습이다.]]] 이 트랙터는 부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걸 개발하는데 진짜 페르구슨 트랙터 한 대 값이 들었지만, 곧 그 정도는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트랙터 장난감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에 레고 사가 출시한 [[플라스틱]] 장난감 중에는, 오늘날 알려진 레고 블록의 전신이 있었다.[* 다만 이 블록은 레고 사에서 발명했다고 하기는 힘든데, [[영국]]의 장난감 디자이너인 [[https://en.m.wikipedia.org/wiki/Hilary_Fisher_Page|힐러리 해리 피셔 페이지]]가 설립한 회사와 동명의 조립 완구인 키디크래프트(Kiddicraft)를 레고 블록의 시초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이 블록의 샘플은 전술한 문제의 '''작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구입할 때 함께 왔는데, 레고 사는 그걸 기초로 하여 자사의 블록 완구를 만들었다. 힐러리는 이것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그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은 힐러리가 죽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힐러리의 딸에 의하면 힐러리는 레고에 대해 알고서 안심했다고 한다. 1981년에 레고 사는 거금을 들여 키디크래프트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고 이후 레고 사의 공식 역사에서 힐러리 피셔 페이지와 키디크래프트에 대한 언급을 모두 삭제했다.][* 레고 블록의 특허가 만료된 1978년 이후로 모조품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는데, 수많은 [[짝퉁]] 제조사 중 하나였던 타이코(Tyco)라는 회사를 레고 사 측에서 소송을 걸었으나 법원은 레고 블록 역시 키디크래프트를 모방한 제품이었다는 점을 들어 타이코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후 레고 사는 모조품 관련 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했다.[[https://cafe.naver.com/bricknara/909115|#]]] 그런데 이 블록은 1953년에 레고 브릭으로 이름을 바꿨음에도 인기를 끌지 못했다. 블록끼리의 접합이 약한 것이 문제였는데, 이 점은 1957년에 블록 아래에 파이프를 만들어서 해결되었다. 상단 동영상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연필의 동그란 끝 부분이 브릭의 위쪽 홈 사이에 껴서 빠지지 않는 걸 보고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해인 [[1958년]] [[1월 28일]] 고트프레드는 이 모든 방식을 [[특허]]로 신청하였고 이는 현재의 '''조립형 레고 블록의 시작이 된다.'''[* 이 날을 기념해서 50주년인 2008년에 10184 제품이 출시되었고 켈의 편지가 설명서에 포함되어있다.] 1956년에 레고 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호엔베스테드에 레고 브릭에 완전히 매료된 [[독일인]] 사업가인 악젤 톰센을 사장으로 하는 독일 법인을 설립했다.[* 고트프레드는 처음에는 독일 법인 사장의 자리를 달라는 악젤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악젤이 이미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어 레고 독일 법인에 전력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악젤은 빌룬을 방문해서 사장 자리를 준다면 '''자신의 회사를 아들에게 넘기고 레고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말해 독일 법인의 사장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해외진출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이어졌다. 성장은 순조로워서, 1964년에는 47개국에 진출하게 되었다. 다만 기쁜 일만 있는것은 아니었다. 1958년 3월 11일에 창업주인 올레가 오늘날의 레고 브릭의 탄생을 보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고, 결국 이전까지 상무이사로 일하면서 실질적인 경영과 제품 개발을 맡아왔던 3남 고트프레드가 곧바로 2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고트프레드는 취임 직후인 1959년에 새로운 레고 세트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관리하는 전담 부서인 레고 푸투라를 설치하는 한편,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지사 설립에 매진한다. 그러나 1960년 2월 4일 레고 사에서 또 화재가 일어난다. 다행히 이번에 불탄 건 이미 수익이 많이 감소한 목각 완구 부서 건물이었고 레고 사는 이를 계기로 레고의 목각 완구 생산을 중단하고 레고 시스템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전화위복|어째 화재를 당할수록 흥하는 기업같다.]]''' [[1963년]]에 고트프레드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레고의 10대 원칙을 제창했다. 이는 그로부터 9년 전 코펜하겐의 Magagin du Nord 백화점의 구매과장에게 들은, "현재 출시된 모든 장난감에는 무언가 고차원적인 규칙이 없다"는 불평을 들었던데서 기인한다. 고트프레드는 자사의 제품들 중 플라스틱 벽돌 장난감이 아래 규칙에 가장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각 완구의 단종과 맞물려, 이때부터 레고 사는 가장 완벽한 장난감에 체계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아 '레고 시스템'이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여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 1. [[상상력|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것]] > 1. [[남녀평등|남녀 성별에 초월할 것]] > 1. [[키덜트|나이를 초월할 것]] > 1. [[창작|일년 내내 질리지 않을 것]] > 1. [[창의력|활기차고 흡입력을 가질 것]] > 1. [[시대|세대를 초월할 것]] > 1. [[성장|상상력, 창조력, 발전성 지향]] > 1. [[놀이|놀수록 가치가 높아질 것]] > 1. [[뉴스|늘 아이들의 화제가 될 것]] > 1. [[명품|안전성이 높고 품질이 좋을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