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런던 (문단 편집) == 역사 == [[로마 제국]] 시대 론디니움 요새에서 시작했지만 2010년 복스홀 다리 밑에서 무려 약 6천 년 전 목조건물의 잔해가 발견되면서 정착 시기는 요새 건립 이전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로 사료가 부족해 정확히 당시 런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하튼 [[호노리우스]]가 브리타니아를 포기하고 로마군을 철수시키자 색슨족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중심지 런던은 철저히 파괴되어 유린당해 인구가 1천 명도 안 되는 깡촌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사실 당대 유럽은 인구가 수백 명만 되어도 도시라고 쳐줬다. 그러니까 당시 런던처럼 인구가 1천 명이 안 되는 도시가 유럽에는 넘쳐났다.] 한편 영국에 새로이 정착한 앵글로색슨 족들은 폐허가 된 당대 중심지 런던, 즉 론디니움을 버리고 서편 강변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곳이 현재의 웨스트민스터다. 그래도 점차 인구가 증가하며 폐허였던 구 중심지도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해 도시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꾸준한 바이킹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 시대의 위용을 되찾지는 못하였다. 886년에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밑에서 도시의 재건이 이루어져 수도 [[윈체스터]]에 뒤이은 잉글랜드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게 되었고, 노르만 정복 때 윌리엄 1세가 런던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한 국가의 수도로서 오늘날까지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런던 타워는 당시 로마시대 성벽 유적을 기반으로 그 자리 위에 세워졌다. 1205년에는 왕과 귀족간의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 '런던 시는 모든 고전적인 자유를 향유하며 육로 및 해로를 불문하고 관세를 면제한다. 아울러 짐은 기타 모든 시·읍·면 및 항구가 자유권을 가지고, 관세를 면제할 것을 허용한다.'고 선언하여 런던의 특권을 계속 인정하는 어명을 선포했다. 런던 시에서는 1211년 이후 매년 [[영국 왕실]]에게 토지 임대료를 지불한다. 이게 무려 800년이 넘은 역사로, 이것까지는 영국의 흔해빠진(?) 전통으로 여길 수 있다. 문제는 그 토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 기록에 따르면 Shropshire에 속한 Bridgnorth 의 남쪽 어딘가의 The Moor라는 땅과 Strand 주변의 Tweezer's Alley라는 땅을 빌려주었다는데, 런던 시도 영국 왕실도 여기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계약은 계약이라며 지킨다. 게다가 임대료 지불방식도 '칼, 도끼, 편자 6개, 못 61개'라고 쓸데없이 세세하게 규정했다. 그래서 매년 런던 시는 저 [[칼]]과 [[도끼]], [[편자]]와 [[못(도구)|못]]들을 임대료라며 지불한다. 특히 도끼는 '날카롭게 날을 세운 것'이라고 따로 규정해 놔서 지불 행사 때 따로 도끼가 잘 드는지 시연까지 마친 후 납부한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london-is-still-paying-rent-to-the-queen-on-a-property-leased-in-1211|아틀라스 옵스큐라의 내용]]. 이상의 내용은 엄밀하게는 '시티 오브 런던'의 역사이고 대확장 이후의 상황은 아래의 그레이터 런던에 기술하였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의 유명 도시 이름을 따와서 그대로 자신들이 개척한 마을에 붙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칭이 런던인 도시가 많다.[* 문서화된 예시 중 하나가 창조설(...) 떡밥 중 하나로 유명한 [[런던 해머]].] 비슷하게 파리(Paris)란 이름이 붙은 도시도 미국과 캐나다에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