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일전쟁 (문단 편집) === 러시아 제국 === 러시아 제국은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부코베츠키(А. И. Буковецкий(2006))의 계산에 따르면, 대일 전쟁의 직접 지출액만 23억 4,690만 루블에 달했다. 여기에 간접지출(전투행위로 인한 파괴, 채무이행, 유족 및 상이자 보상금)까지 고려하면 총지출액은 30-40억 루블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으며, 여기에 만일 볼셰비키의 혁명으로 채권이 무효화되지 않았을 경우 1950년까지 지출해야 할 총액은 90-100억 루블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참고로 1904년 러시아 제국 세입이 20억 1,800만 루블이었으니 5년치 세금을 지불해야 할 판이었다. 다만 경제적 손실은 당시 재무장관이던 [[블라디미르 코콥초프]]가 프랑스에 대규모 차관을 받아내는데 성공함으로서 급한 불을 끈다.[* 러시아가 독일을 견제해주기 원했던 프랑스가 일본과의 전쟁을 [[러불동맹]] 조약 위반이라면서 크게 반발했고 때문에 러시아는 주 전력을 동아시아로 이동하는 것에 차질이 생겼다. 그리고 전쟁 아후 러시아의 군사력의 약화를 원치 않았던 프랑스가 경제 지원을 해준다.] 그러나 경제적 손실보다 끔찍한 것은 군사적 손실이었다. 러시아는 대일전쟁에서 29만의 병력 손실을 입었다. 포로 7만 4천을 제외해도 21만 6천 명의 병력 손실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러시아가 자랑하던 발트함대와 태평양함대의 전멸이었다. 러시아의 해군력은 세계 3위에서 6위로 추락했다.[*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폴 케네디에 따르면 이때 러시아는 아예 일시적으로 강대국에서 탈락했다고...] 한때는 태평양까지 넘보던 러시아 해군이었지만, 러일전쟁 직후에는 독일을 상대로 발트해 연안을 지키는 것으로 대외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타격.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대립하고, 국내의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격화하는 시점에서 대일전쟁 패배는 반황실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패전한 [[러시아 제국]]은 1905년 혁명이란 대격변을 겪었으며, 국민들은 로마노프 황가에 대한 마지막 기대와 신뢰를 거두었다. 세계 정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의 패배를 생각하고 [[거문도 점령 사건|거문도를 점령해]] 해군기지화 하는 등 러시아군과 맞설 계획을 하고 있던 영국은 1세기간 이어졌던 [[그레이트 게임]]을 종결했다. 이는 [[영러협상|영러 협상]]으로 이어져 [[러불동맹|러불 동맹]], [[영불협상|영불 협상]]과 함께 유럽 대륙에서 [[삼국협상]]이 탄생하고 이에 대응한 [[삼국 동맹]]이 상호 대립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또한 10년 뒤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어 세계 공산화에 큰 족적을 남긴 소련 탄생의 배경도 됐다. 러시아 제국은 삼국 협상과 함께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쟁으로 인한 경제 붕괴와 식량난을 견디지 못한 [[러시아 혁명|러시아인들의 분노]]로 붕괴되고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들어서게 되고, 1945년 [[만주 작전]]으로 러일전쟁의 굴욕을 되갚아주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