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산대불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attachment/Leshan_Buddha.jpg|width=530]] || || 누각이 있던 원래 모습의 추정 모형 || 713년 해통화상(海通和尚)에 의해서 대불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곳은 원래 3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물살이 사나워서 이곳을 이용하는 화물선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해통은 부처가 사나운 물살을 가라앉히길 희망했다. 20여 년의 시주금을 모은 끝에 그는 마침내 계획에 필요한 돈을 충분히 모았다. 하지만 어느 한 관리가 해통화상이 시주로 받은 재물을 탐냈다고 한다. 그 때 해통화상이 탐욕스런 관리에게 아랫말을 하면서 자신의 두 눈을 빼서 관리에서 주었다고 한다. 크게 놀란 관리는 해통화상에게 용서를 빌고 낙산 대불 공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해통화상과 관련한 유명한 고사. >自目可剜佛财难得(자목가완 불재난득) >"내 눈은 도려낼 수 있으나, 부처님의 재물은 얻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해통화상은 [[미륵]]상이 완성되기 전에 입적했고, 낙산 대불은 훗날 이곳에 부임한 절도사 위고(韋皐)에 의해 모습을 갖췄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낙산 대불이 완성된 뒤 실제로 수재가 상당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대불을 조각하기 위해 파낸 돌덩어리들을 그냥 강에다 버려''' 쌓인 결과 유속이 완만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높이 71m, 앉은 키 28m, 어깨 너비 28m, 머리 너비 10m에 달하는 대불을 완성하는 데는 꼬박 90년이 걸렸다. 바위[* 사암질이라고 한다. 상당히 무른 바위로 풍화에 의해 쉽게 침식된다. 자연적인 모르타르(벽돌 바를 때 쓰는 그것)로 이루어진 바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를 깎아 만든 대불이 처음 모습을 드러낼 당시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대불은 붉은 석상이지만 원래는 황금 도금과 화려한 색상으로 채색돼 있었다. 원래 대불은 7층짜리 처마 지붕을 지닌 누각 안에 있어 머리만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백 년 동안 낙산 대불을 덮고 있던 목제 [[누각]]은 [[명나라]] 말에 발생한 전란에 방화로 잿더미로 사라져 버렸다.[* 이 누각이 햇빛과 강우를 가려 식물이 자라는 것을 막고 대불의 온습도를 유지하는 등의 보호막 역할을 했으나, 이것이 없어지면서 훼손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쓰촨성 지진 이후 지진에 의한 손상을 우려해 지표투과 레이더를 이용해 대불에 대한 정밀 조사를 벌인 결과, 지진에 의한 내부 손상은 없었지만 대불 속에 여러 개의 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