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랴오청시 (문단 편집) === 랴오청 고성 === [[파일:랴오청 중국위성 1.png|width=900]] 라오청고성의 위성 사진 전설에 따르면 랴오청 일대의 오동나무 숲에는 한 쌍의 봉황이 살며 백성들을 보호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해, 바다에서 나타난 흑룡이 수컷 봉황을 죽인 후 큰 호수를 만들어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흑룡이 잠시 출타한 사이에 호수 중앙에 성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에 달아났던 암컷 봉황이 인간과 결혼해 낳은 왕동과 왕창을 데려와 성의 건설을 도왔다. 돌아온 흑룡은 호수에 세워진 성을 부수고 사람들을 헤치려 하였고, 암컷 봉황과 두 아들이 맞서 싸웠다. 결국 흑룡이 패하여 바다로 돌아갔는데, 흑룡이 빠져나간 구멍으로 물이 계속 들어와 성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자 왕동과 왕창이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저 구멍을 메웠고, 이에 두 형제의 이름을 따서 봉황성을 동창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믿기 힘든 이야기이나, 치수가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였는지를 알려준다. [[http://www.bytravel.cn/landscape/64/zhonghuashuishanggucheng.html|고성에 대한 설명]] 본래 요성고성은 토성이었는데, [[명나라]] 초엽인 1372년 동창평산호지휘첨사 진용이 벽돌성으로 개축하였다. 11.7m 높이의 성벽은 너비가 밑단은 11.7m인데 상단은 6.7m로 좁아진다. 남쪽에서 바라볼 때에 동문과 서문이 [[봉황]] 모양처럼 보인다 하여 봉황성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호수를 해자 삼아 지어진 까닭에 '수성'으로도 불린다. 1374년 주변을 감시하고 시간을 알리기 위한 종루로써 세워진 광악루 (광웨러우)는 [[우한]] 황학루, [[웨양]] 악양루와 함께 명나라 3대 명루로 불린다. 본래 성을 세우고 남은 목재로 세웠다고 여목루 (餘木樓), 현지 지명을 딴 동창루 (東昌樓)로 불리다가 [[홍치제]] 때에 광악루로 개칭되었다. 높이는 무려 33m로, 중국에서 현존하는 명대 누각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