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랩처 (문단 편집) === 문화, 예술 === 바이오쇼크의 시대가 1950~60년대이고 장르가 [[디젤펑크]]이기 때문인지 [[아르데코]]형의 건축방식을 사용한다. 랩처 디자인의 설계는 시몬, 다니엘 웨일즈 형제가 했다. 본래 이들 형제는 교회의 건축을 설계하는 일을 했으나 라이언의 요청에 의해 랩처 설계를 맡게 되었다. 설계의 주제는 인간의 이상과 승리를 표현하는 것. 허나 이들의 건축 디자인은 후일 랩처에 균열이 가서 여기저기 물이 새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전체적으론 랩처의 붕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img3.wikia.nocookie.net/Atrium.png|width=100%]]}}} || || {{{#ffffff '''이른바 유희의 요새라고 불리우는 포트 프롤릭의 전경'''}}} || 랩처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음주, 도박, 마약 등에 아무 제약이 없었다. 아예 대놓고 가짜 술과 마약을 팔아도 막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중 유명한 주류, 약물 가게로는 '르 마키 데폭'이 있었으며 도박장으로는 포트 프롤릭[* 일명 랩처의 유흥지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가게들과 시설들이 집합해 있었다.]에 있는 '파라오의 인생 역전' 등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기업들은 랩처 내전이 발발하면서 전부 문을 닫았기 때문에 랩처의 문화 역시 당연하게도 쇠퇴하였다. 음악으로는 1930년대 이후에 나온 재즈풍의 음악이 유행했고, '플리트 홀(Fleet Hall)' 극장에서는 [[샌더 코헨]]을 주연으로 한 뮤지컬 공연이 상영되었다. 소설의 언급에 의하면 영화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미술 활동으로는 확실치 않으나 초현실주의, 추상화 등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언과 랩처 의회는 예술 활동을 장려했으며[* 당장 의회의 위원 중 안나 컬페퍼와 샌더 코헨만 하더라도 예술가이다.] 샌더 코헨의 경우 어떠한 짓을 하던 라이언의 편이라는 이유 하나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셜리반이 코헨을 몇번이나 처넣으려 했으나 라이언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허나 내전 이후 라이언이 자신을 반대하는 예술가들을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안나 컬페퍼가 샌더 코헨과 라이언의 관계를 풍자하는 '라이언의 노래하는 새(Ryan's Songbird)'를 부르다 살해당한다.] 전쟁통에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살해당하거나 스플라이서화가 진행되면서 미치광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바람에[* 샌더 코헨의 경우 제자들과 함께 포트 프롤릭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 산 채로 석고를 부어 석고상으로 만들고 면도칼로 난도질하거나 산 채로 얼음동상으로 만드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랩처의 예술 역시 몰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