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트비아/역사 (문단 편집) == 근세 == 1558년 [[루스 차르국]]이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의 봉신국이던 리보니아 연맹으로 쳐들어왔다. 당시 리보니아 연맹의 독일인들은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서로 욕하고 싸우기 바쁜 상황이었고, 라트비아인 농노들은 [[독일인]]들도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전쟁의 명분은 리보니아 연맹의 독일인들이 1554년 루스 차르국에 충성한다 했다가 1557년 다시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충성 대상을 바꾸며 약속을 위반했다였으나, 실상은 리보니아의 신,구교 분열이었다. [[이반 4세]]의 군대는 순식간에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를 점령했다. 그러나 몽골군과 이반 뇌제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군이 점령한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 이상의 야만적인 학살을 일삼자,[* 점령지 주민들을 벌거벗긴 후 목매달고 나서 화살을 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반 4세는 노브고로드 시민들을 처형할 때도 시민들의 옷을 벗겨서 처형하였으며, 정적들을 제거할 때도 정적들의 영지의 여성 농노들을 전부 벌거벗긴 상태에서 도망가게 하며 화살을 쏘는 것을 보며 즐겼다 한다.] 라트비아인들의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서고, 리보니아의 독일인들도 덴마크와 스웨덴, 리투아니아에 다급히 구조를 요청했다. 그 결과 루스 차르국과 덴마크, 스웨덴, 리투아니아 사이의 리보니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루테니아 영토였던 [[비텝스크]]와 [[스몰렌스크]] 역시 루스 차르국 군대에 공격을 받아 많은 주민들이 살해당하자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폴란드와 그동안의 [[동군연합]] 차원을 넘어 아예 연방으로 합쳐 같이 루스 차르국에 대항하자는 의미로 루블린 조약을 맺어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합쳐졌다. 폴란드군의 원조에 힘입어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리보니아와 벨라루스에서 러시아와 타타르 연합군을 간신히 물리치고 1578년 루스 차르국의 괴뢰국인 리보니아 왕국을 무너트리며 라트비아 일대를 탈환했다. 리보니아 전쟁의 결과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일대는 그야말로 초토화되면서 마리아의 영토 이른바 테라 마리아나라고 불린 리보니아 연맹은 해체되었다. 에스토니아 북부는 스웨덴령 [[에스토니아 공국]]이 들어섰고, 사레마 섬은 덴마크 영토가 되었으며 쿠를란트와 젬갈렌은 가톨릭 주교구가 박살난 김에 마지막 기사단장 고트할트 케틀러가 루터 교회로 개종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칭신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속국인 [[쿠를란트-젬갈렌]]으로 세속화되었다. 그리고 수도 [[리가]]를 비롯한 나머지 리보니아 지역은 리보니아 공국으로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직할령이 되었다. 다만 가톨릭에서 루터교회로의 개종은 당시에는 독일인 지주들과 상공업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일 뿐이었다. 1586년 빌헬름 대주교에 따르면 라트비아인과 리보니아인 농노들은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평일에는 발트 토속 신앙 신들을 숭배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쿠를라트 젬갈렌 공국은 이후 해양력을 길러 서아프리카와 카리브 해에 [[식민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웨덴이 [[북방전쟁]]의 결과로 이 지역을 리보니아 지역을 획득하였다.[* 다만 라트갈레 지역은 폴란드-리투아니아가 계속 유지하였다.] 스웨덴이 라트비아를 지배할 당시 리가가 당시 스웨덴 왕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였다고 한다. 스웨덴은 과거 상류층 자제들만 입학이 가능했던 김나지움(일반 학교)에 도시 서민이나 농노의 자제들도 입학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탈환한 적도 있었으나 [[대북방전쟁]]의 결과로 러시아가 라트비아를 차지했다. 자세한 건 [[쿠를란트-젬갈렌]] 참조. 서유럽에서 농노제가 점점 폐지되거나 완화되던 것과 달리 라트비아의 농노제는 이웃 폴란드나 러시아처럼 점점 개악되었다고 한다. 라트비아의 종주권은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스웨덴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다들 독일인 지주들이 라트비아인 농노들 위에 군림하는 사회 구조를 개혁하는데는 소극적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