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등대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64px-Lighthouse_-_Thiersch.png]] <알렉산드리아 등대 상상화> 이미 유사이래 비스무리한 발상이 있었다. 특히, 과거 항구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막말로 항구가 옮겨다니는 격이라, 배를 어디다 대야 하는지 알기가 어려워서, 위치를 안내하려 연안에서도 쉽게 보이도록 밤새도록 불을 밝힌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항구가 정립된 후에는 상술했듯 위험을 알리는 신호기로 쓰이는 지금의 등대로 변한다. 한국사에서는 비록 신화적으로 각색된 구절이지만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에 있는,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가야]]로 들어올 때 [[수로왕]]이 신하 유천간에 명해 [[망산도]] 위에서 기다리다 횃불을 올려 허황옥의 배가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도경]]에도 중국 사신의 배가 밤에 다다르면 봉화불을 밝히는 등대 시스템이 존재했음이 기록돼있다. 최초의 현대식 등대는 1909년도에 대한제국 시절에 지어진 [[가덕도]] 구 등대이다. 상시 돌아가는 시설로서의 등대는 적어도 [[고대 이집트]] 시절에는 이미 체계화되어 있었으며,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의 등대]]가 있었다.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무려 160 m나 되는 높이에 거대한 거울로 불빛을 반사시켜서 거의 40 km 밖에서도 불빛이 보였다고 전해지나 15세기 경에 지진으로 무너졌다. 1183년 아랍의 지리학자 이븐 주바일의 기록에는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음." 이라고 적혔지만, 15세기 모로코 출신 여행자 [[이븐 바투타]]는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등대 입구로 들어가기도 버겁다." 라고 기록했으므로 그 사이 언제가쯤 기능을 상실한 모양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70px-A_coruna_torre_de_hercules_sunset_edit.jpg|width=300]]||[[파일:알제리 델리스 등대.jpg|width=666]]|| ||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항구 라코루냐 인근에 서 있는 등대로 일명 "헤라클레스의 등대"라고 불린다. 높이는 55m이다. || 알제리 [[델리스]]의 등대. 좌측은 2004년, 중앙은 2010년, 우측은 1881년에 세운 것이다. 높이는 각각 15, 28, 29m이다. 현재는 중앙의 등대만 기능한다 || 2세기에 [[로마 제국]]이 파로스의 등대를 모방해서 [[스페인]]에 등대를 세웠는데, '헤라클레스의 탑'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등대는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잘 작동한다. 그래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노인학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