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들국화(밴드) (문단 편집) === 활동 당시 === [[파일:external/news20.busan.com/20110223000096_0.jpg|width=600px]] 왼쪽부터 허성욱, [[최성원(가수)|최성원]], [[전인권]], 조덕환 > 원래 [[존 레논]]은 (전)인권이가 좋아했었고 나는 [[폴 매카트니]]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에요. 1집의 커버를 비틀즈의 [[Let It Be]]처럼 만든 것도 (전)인권이의 아이디어입니다. >---- >[[http://www.weiv.co.kr/archives/10288|최성원 인터뷰]] 앨범 발매 이전에 방송이 아닌 소극장이나 라이브 카페 같은 곳에서 [[라이브]]를 하면서 실력을 다지기 시작했으며, 1985년 1집 [[들국화(앨범)|들국화]]를 발표하면서 엄청난 인기와 함께 [[한국]] 록의 전설이 되었다. 한국인의 정서를 외국의 록 형식에 잘 담아냈다고 평가받는다. 대한민국 락그룹의 원형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멤버들은 원래 락커라기보다는 [[포크]]송 가수에 가까웠다. 밴드내 역할분담 역시 4명의 파트가 확실한 게 아니라 보컬과 연주를 번갈아가면서 했다는 점에서 밴드보다는 크루에 좀 더 가까웠다. 이것은 포크 음악가들 문화의 영향이기도 했다. 재미 있는 점은 서양에서도 이런 크루가 밴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락음악이 현대 대중 음악으로 발전해왔다는 것. 한국의 경우 1980년대에 똑같은 모습이 들국화에서 보였고 그게 결국 한국 락의 직접 시조격이 되었다. [[백두산(밴드)|백두산]]의 [[김도균]]이 들국화를 평할 때 '락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 밴드'라고 했는데 이는 이러한 부분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1집 음반 안에 라이브 콘서트 할인권과 전국 순회 콘서트 일정표를 넣을 정도로 철저하게 라이브 활동을 고집하였다. 1집의 화려한 애들립을 포함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는 모두 세션으로 참여했던 최구희의 솜씨다. 최성원은 조덕환의 기타실력으로는 앨범을 레코딩하기엔 부족하여 1집에서 '축복합니다'의 간주 정도만 시켰다고 밝혔다. [[http://www.weiv.co.kr/archives/10288| 최성원 인터뷰 ]] . 이것은 곧 조덕환의 탈퇴로 이어진다. 1집 발매와 동시에 주찬권이 정식멤버로 가입하였고 4명의 멤버에 세션 기타리스트를 포함한 5인조로 진행된 전국 순회 콘서트는 말 그대로 인기 폭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