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두정갑 (문단 편집) === 방어력 === 이러한 구조 덕분에 두정갑의 유지 보수 및 방호력이 종래의 찰갑류에 비해 극단적으로 향상되었다. 찰갑은 한 번 베이면 가죽끈이 끊어져서 철편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며, 전투가 끝나면 가죽끈을 풀고 다시 철편들을 이어 붙여야 하는 등 유지보수에 매우 시간이 들기 때문에 번거롭다. 반면 두정갑의 갑찰들은 두정못으로 단단히 고정되므로 외피가 도려내지는 수준으로 난도질당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찔리거나 베여도 갑찰과 외피의 결속이 끊어질 일이 없다. 끊어지더라도 망치질 몇 번이면 다시 갑찰이 고정되기 때문에, 끈 하나에 의존하는 찰갑에 비해 내구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또한 철판이 찰갑의 찰편에 비하여 커져서 [[단조(금속 가공)|담금질]]이 가능했다. 연철로 주로 제작되는 찰갑과 비교하면, 강철로 제작된 철판을 열처리하며 두들겨 찰편으로 사용하는 두정갑은 생산속도도 빨라지고 방어력도 강해졌다. 원래 대량으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입히기 쉬웠던 찰갑보다도 더욱 더 만들기 쉬워지자[* 찰갑은 한 벌 만드는 데 철편 수천 개가 필요하나 두정갑은 수백여 개면 된다.] 따라서 11세기부터 대부분 나라의 병사들의 갑옷이 두정갑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일반화되었다. 또한 철판 위를 가죽 혹은 직물로 덮어 겉감으로 삼았기에 활 같은 투사무기를 맞았을 때에도 충격이 덜했다. 현대의 방탄복과 마찬가지로 직물이 투사체에 휘감기며 위력을 반감시키는 것과 동일하다. 거기에 더불어,철판을 고정하는 두정못은 베임과 찢어짐을 방지한다. 두정갑의 방호력은 찰갑의 2배이다. 단지 유지보수가 편하다는 이유에서만 일본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두정갑을 채용한 것이 아니다. 고구려 찰갑 방호력 테스트를 보면 찰갑도 기본 화살방호능력은 제공하나, 두정갑의 화살 방호영상과 비교하면 그 충격량이 확연히 구별된다. [[https://youtu.be/sI1VaJZKl9Y| 해당 영상]]과 같이 찰갑은 화살을 막긴 하나 갑찰을 연결하는 끈이 끊어진다. 또한 철편의 피해량도 보면 확연히 구분이 가능한데. 찰갑은 충격량을 철편이 그대로 받아 맞은 부위의 철편은 심하게 구부러지고 뜷리기 직전이나 두정갑은 살짝 구부러졌을 따름이다. 삼국시대 고구려(북방)계 [[찰갑]]은 비록 부품수가 많고 관리가 힘들었지만, 유연한 구조로 인해 충격이 환화되어 동시대 [[판갑]]보다 화살의 충격을 더 잘 분산하고 흡수하였듯이 ([[https://shyne911.tistory.com/m/1445|참조 영상]]) 두정갑도 비슷한 이유로 화살에 대해선 방어력이 매우 강했다. [[https://youtu.be/rAIqOtw1j7o?t=1491|영상]]에서 화살이 철판 한 장은 뚫었지만 같은 철판으로 만든 두정갑은 전혀 뚫지 못하였다. 단순 철판을 갑옷으로 사용하면 오히려 화살에 더 관통이 잘 된다. 화살의 끝에 집중된 뚫는 힘과 충격의 분산 및 흡수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유연한 구조로 인해 충격이 분산되는 지점은 갑옷만이 아니라 착용자의 몸도 해당된다는 단점이 있다.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충격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타박상이나 골절 문제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한다.]. 이는 가야 판갑 화살관통시험에서 볼 수 있다. 위의 영상에서 고구려 찰갑과 가야 판갑을 비교한 영상을 보면 확연히 구분 가능하다. 게다가 판갑은 활동력이 크게 제한된다. 두정갑은 이와 다르게 움직임도 편하게 제작되어 오히려 더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두정갑은 베기나 철판을 고정시키는 못이 찢겨질 정도의 내려치는 공격이 아닌 한 단병접전에서도 충분한 방호력을 제공한다.다만 조선의 두정갑은 철편이 겉감에만 고정되어 있고 철편끼리 연결된 것은 아니어서 백병전에서 겉감이 찢어지면 철편이 떨어져나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1393402711|#]] 사실 조선의 두정갑이 도검의 베기 공격에 약점이 있긴 했지만, 당장 동시기 주적이였던 일본의 괘갑과 동세구족이 오히려 단병접전에서는 방어력이 더 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칼에 베이면 찰갑류 갑옷은 끈이 끊어지며 갑옷 자체가 떨어지지만, 두정갑은 못으로 고정되어 어지간히 크게 찢어지지 않으면 철편이 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괘갑(오오요로이) 한 벌을 만들려면 찰편 수천 개를 사용해야 했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는 생산성을 높이고자 당세구족, 즉 동세구족을 제작할 때에는 간편하게 큰 철판을 수십~수백여 개를 썼다. 그 철판이 강철이 아닌 연철이 대부분이라는 것과 당시 일본의 제철기술, 그리고 사철, 즉 저질철로 만든 것이라는 문제가 있어서 당시 조선의 갑옷과 비교하면 상당히 방호력이 떨어졌다. 안 입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말이다. 1711년 승정원일기 기사[* https://sjw.history.go.kr/id/SJW-D37090040-02600]를 보면 문신들이 두정철갑이 생산비용이 비싸고 무거우니 생산을 중지하고 두정피갑을 우선 쓰자고 건의했으나, 이휘라는 무신이 '제가 50보 거리에서 조총을 쏴 봤는데 피갑은 뚫리지만 철갑은 안 뚫리더라.' 하고 말하여 철갑 역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서구에서도 두정갑과 같은 구조로 만든 더블릿이 방탄복으로 사용되었으며, 제한적이나마 방탄 효과를 실제로 발휘했다. 현대의 실험에서도 사용된 철판의 두께나 재질에 따라 다르긴 해도 철판이 우수하다면 방탄이 가능했다. 또 그 무시무시하다는 기사의 카우치드 랜스 돌격에 대한 실험영상에서도, 창은 브리건딘을 뚫지 못했다. 게다가 조선 후기 병법서에서 검법 부분을 보면 겨드랑이, 눈가 등 두정갑이 잘 덮지 못하는 곳을 노리는 형태가 나타난다. 이는 중세 후기 갑옷이 발전한 시기 서구의 검술이 관절부나 투구의 틈새를 노리는 형태로 발전한 것과 유사하다. 방어력의 효용에 있어서 철두정갑은 세계 유수의 갑옷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