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돼지고기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고기의 중량 기준으로 [[대한민국|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이다. 다만, [[도축]]수로 따지면 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는 [[닭고기]]이다. [[한국인]]이 돼지고기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부위가 바로 '''[[삼겹살]]'''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양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삼겹살을 수입할 정도인데,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삼겹살은 그렇게 인기 있는 부위가 아니었다. 이전에는 [[돼지갈비]]가 외식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고, 소불고기를 모방해 만들어진 돼지불고기가 그 다음 순위였다. 삼겹살은 탄광 노동자들이 소위 '목에 기름칠하여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먹는 고기에 불과했다. 양념요리가 아닌 로스구이로 먹는 경우도 비계와 지방이 많은 삼겹살보다 적당한 지방에 살코기가 더 많은 [[목살]]을 더 고급부위로 쳐주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들어 대중화되고 인기몰이를 하게 된 것. 돼지갈비는 여전히 인기가 좀 있는 편이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인지도가 낮은 탓에 [[삼겹살]]에 비해서 식용률이 적은 편이다. 정부 및 민간단체 등에서도 돼지고기 부위의 인지도를 높이고 돼지고기의 모든 부위를 먹을 수 있도록 장려를 하고 있는 편. 2013년 즈음에는 재래시장에 가보면 [[앞다리살]], [[뒷다리살]] 등은 삼겹살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었으나, 2016년에는 엄청나게 가격이 올라서, 13년 즈음에 1팩 가격이 3천원에서 4천원 하던 것이 15년에는 7천원에서 8천원을 오가고 있었다. 미국 돼지고기 가격이 수년째 폭락하고 있는데 비해,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 FTA]]를 체결했음에도 가격이 내려가기는 커녕 엄청난 속도로 오르고 있는데, 한때 수입육 판매점이 없는 시골 등지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비싼 국내산 돼지고기를 구매하고 있던지라 원성이 자자하기도 했다. 이렇게 [[삼겹살]]을 제외한 다른 돼지고기 부위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재고가 남아돌아 처치곤란이었으나 남아도는 돼지고기 부위들을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에 사용하면서 남아돌던 재고도 소비되고 국산 돼지고기를 사용한 햄과 소시지가 팔리면서 그에 따라 양돈농가의 소득도 약간이나마 오르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사]]를 보면 [[고구려]]와 [[발해]]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는데, 고구려는 현재 불고기의 원조격인 [[맥적]]을 돼지고기로 만들었으며 결혼 예물이 술과 돼지고기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인들은 귀금속이나 비단같은 사치품을 결혼예물로 보내면 딸을 재물을 받고 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물은 축하할 술과 안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한다.] 발해의 기록은 예전 부여국 자리였던 발해 막힐부의 돼지가 특산물로 유명했다. 이 지역에서 예로부터 돼지를 많이 길렀고, 이는 음식이나 의복재료로도 이용되었다. 발해국지(渤海國志)에서 흑수부에는 “그들은 돼지를 잘 길렀는데, 부유한 집에서는 몇 백 마리나 되었다. 그들은 돼지의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지어 입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쇠고기]]에 비하면 대우가 좋지 않았다. 성질이 냉하므로 많이 먹으면 안되며 쇠고기와 같이 먹으면 더욱 몸에 좋지 않다거나 약의 효과를 없앤다거나 하는 등 경계하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의 토종 돼지는 개량되지 않아 아주 작았는데 이는 돼지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시 소는 농사나 방앗간 인력, 말은 교통 및 전쟁, 염소는 고기와 젖, 양은 고기와 털로 사육되었기에 돼지는 별로 사육되지 않았고 대신 앞의 동물들과 닭, 오리/거위를 주로 키웠는데 사실 동아시아 중 근대화 이전부터 돼지고기 많이 먹던 곳은 류큐나 중국 정도인 것으로 볼때 그냥 그 지역이 돼지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서 발달한 듯 하다. 물론 아예 안먹었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제사용으로 돼지를 기르기는 길렀고, 여말선초 당시의 [[성계탕]]의 경우 돼지를 잡아 고깃국으로 만들어 먹었고, 1450년대 쓰여진 산가요록에는 돼지껍데기로 만든 식혜 요리법도 있었다. 또한 조선 후기 냉면을 시키면서 돼지고기 수육도 같이 주문한 기록도 남아있고, [[애저회]]가 조선시대 당대에 만들어져서 현재까지도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선시대 당대에도 먹을 사람은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기록상으로 볼 때 [[19세기]]부터는 돼지고기가 많이 퍼졌다고 한다. 제주도 설화에서는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이 돼지고기와 수수떡이라고 나와있다. 마빈 해리스의 저서 <문화의 수수께끼>에 따르자면 특히 물이 부족한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돼지는 곡류를 먹여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식량을 축내므로 천대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이라도 숨어서 돼지를 키워서 먹기도 했다. 가령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숲에다 울타리를 치고 돼지를 방목해서 키우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렇게 방목해서 키우면 굳이 곡류를 먹일 필요도 없다. 돼지가 상수리나무의 열매, 즉 [[도토리]]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 도토리를 먹여서 키운 돼지는 맛도 아주 좋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예로는 이베리코 돼지가 있다. 한국어 '''[[도토리]]라는 이름이 [[돼지]]와 엮여서 나왔다'''. 과거에는 돼지를 '돝'이라 불렀는데, 도토리를 '돼지가 먹는 [[밤(열매)|밤]]'이라고 해서 '돝의 밤'이라는 뜻의 '도태밤'을 거쳐 '도톨밤'[* 현재도 일부 [[동남방언]] 구사자는 도톨밤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쓰고 있다고 한다.]이라고 했다가 후에 '도토리'로 떨어져 나왔다고한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제주 돼지고기가 등록되어 있다. 제주도축산진흥원 종축장에서 랜드레이스, 요크셔, 듀록을 교잡하여 생산한 3원교잡종 종돈으로 생산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