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화약품 (문단 편집) == 역사 == [youtube(uSMESKVK3ds)] 구한말 시절이던 [[1897년]][* 이는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현재까지 오래 살아남은 기업 중 하나며, 1위인 [[두산그룹]]은 일제 강점기 시절 각종 친일활동 및 인하여 역사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고 광복 후 1946년 업종 변경이전에 1년동안 폐업한 상태인 이유가 있다.], 궁중 선전관 출신 노천 민병호와 아들 민강(1883~1931)[[http://m.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5&nNewsNumb=002663100021|#]] 등이 한성 [[서소문]]에 동화약방 개업과 동시에 대한민국 최초 신약 활명수를 출시해 1910년에 국내 최초로 상표등록했다. 이로써 동화약방은 [[기네스북]]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이자 제약사, 최초의 등록상표, 등록상품 등 4가지 부문에 등재된 기업이 되었다. 동화라는 이름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 는 뜻이다. 부채를 상표로 정한 것도 심오한 뜻이 있다.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하여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紙竹相合 生氣淸風(지죽상합 생기청풍)”에서 따왔다.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민족정신을 내포하고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0546249|#]] 초기에는 활명수 외에 백응고, 인소환 등 총 3종밖에 없었다가 1929년에 80여 종으로 늘었다. 다른 한편으로 본점 주인 민강은 일제강점기 치하이던 1919년에 경성 연통부 행정책임자로서 활명수 판매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https://stamp.epost.go.kr/board/board.jsp?site=&id=spsw0101&mode=view&idx=6429|#]] 그 이유로 일제의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1930년 9월 25일 주식회사로 전환했으나[[http://db.history.go.kr/id/hs_001_1931_03_14_13440|#]], 민강 초대 사장은 독립운동에 힘쓰다 두 차례 걸친 옥고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으로 사세가 기울어지자 1937년에 독립운동 동지 보당 윤창식(1890~1963)에게 인수되어 재건에 주력해 1939년 들어 의약품종을 90여 종으로 늘렸으나, 1945년 8.15 해방 후 남북분단과 6.25 전쟁이 겹치며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그러나 본사는 차차 사회가 안정되면서 사세를 회복해 1962년 2월부터 동화약품공업(주)으로 상호변경했고, 이듬해 윤창식 사장이 세상을 떠나자 장남 윤화열(1915~2003)이 가업을 승계해 2년 후 서소문 본사를 새로 짓고 제2공장을 세웠고, 1967년부터 '까스활명수'를 시판했다. 1971년에 현대유리공업(주) 인수 후 1972년에 안양공장을 세워 치료제 [[의약품]]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1973년부터 국내 최초로 희귀약품센터를 개설 후 중앙연구소를 세웠고, 1974년 동생 가송 윤광렬(1923~2010)이 사장에 취임한 후 1976년부터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살충제 '홈키파'[* 훗날 홈매트와 함께 [[유한양행]]과 한국크로락스를 거쳐 현재 [[헨켈]]홈케어코리아에서 제조·판매하고 있다.]를 출시했다. 1978년부터 전 사원 월급제 실시 후 1980년부터 덴마크 [[https://www.leo-pharma.com/|레오파마]] 사와 제휴해 '후시딘'을 생산했고, 1982년에 프랑스 에치팜덱소와 제휴로 간장약 '헬민'을 출시했다. 1985년에는 안양공장에 국제의약제조표준설비(KMGP)동을 개설 후 이듬해에 중앙연구소가 병역특례연구기관으로 지정되었다. 1991년부터 안양공장을 증축해 액체약품 설비 초고속자동화 및 로보트화를 완수해 전제형 KMGP 적격업소로 지정되었고, 1993년부터 식품드링크 사업도 개시했다. 1997년 외환위기 후 이듬해 살충제 제조부문을 한국크로락스에 매각하고[* 이후 [[헨켈]]에게 인수되었다.] 2003년부터 아들 윤길준 사장이 취임한 후 3세 경영을 위한 밑밥이 마련되었고, 2008년부터 윤광렬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윤길준-도준 형제가 각각 부회장과 회장으로 승진해 3세 경영체제가 수립되었다. 2009년에 현 사명으로 변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