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하 (문단 편집) == 그 외 군벌 세력들 == 한 때 포선만노는 고려, 몽골, 야율유가의 [[동요(국가)|동요]][* 거란족의 부흥운동으로 세워진 거란의 나라. 1212년 금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1213년에 건국되었다가 몽골에 복속되었고, 그 이후 1269년까지 간신히 이름만 유지되다가 [[몽골 제국]]에 완전히 흡수되었다.]와 동맹을 맺고, 거란의 [[후요]][* '''대요수국'''이라고도 불린다. 야율유가의 동생 야율시불을 중심으로 한 거란족이 몽골에 대한 복속에 저항하여 동요에서 이탈해 세운 나라였다. 1216년~1219년까지 3년간 존속했으며, 야율시불 - 야율걸노 - 야율금산 - 야율통고여 - 야율함사로 이어졌다. 수도는 등주(澄州, 오늘날의 [[랴오닝성]] [[안산시(중국)|안산]]). 연호는 천위(天威) - 천우(天佑) - 천덕(天德)이었고, 1216년부터 1217년까지 사용했다.]를 진압했다. 그러나 이후 몽골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고려와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지만 고려는 간만 볼 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순(韓恂)과 다지(多智)의 반란이 진압된 후인 1222년 그 휘하 잔당들의 도움을 받아 고려 영토에 쳐들어오기도 했다. 한편 포선만노처럼 우가하(亏哥下), 가불애(哥不愛), 가유(賈裕) 등의 옛 금나라의 여진족 장수들도 압록강 북부에서 군벌 세력이 되어 고려나 동진, 몽골 등 주변 국가에 약탈을 목표로 쳐들어가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사이가 나빴으며[* 단, 가불애의 경우 다른 세력들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불명이다.], '''가유'''의 경우, 황색 깃발을 들고 다니면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황기자'(黃祺子)라고도 불렸는데 이 가유라는 장수는 거란 유민들과 손을 잡고 고려를 침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군에 패배하여, 대부영(大夫營)에 진을 친 상태에서 연회로 취해있던 가유는 붙잡혀 목숨을 잃었고, 가유와 원수지간이었던 '''우가하'''는 고려에게 감사하다며 고려와 친해지려고 시도했다. 포선만노와 싸우다가 패배하여 압록강을 넘어 고려로 망명한 우가하는 1219년 고려에서 한순과 다지의 반란이 터졌을 때 반란군의 대장이었던 한순과 다지를 불러내 목을 베고는 이 사실을 고려에 알렸고, 이에 고려는 보답으로 많은 공물을 내려주기도 했다. 거만해진 우가하는 몽골군 복장을 하고 고려 국경을 약탈했다. 결국 우가하도 1226년에 고려에게 제대로 혼쭐나서 그 이후에는 약탈을 벌이지 않았다. '''가불애''' 역시 우가하와 더불어 압록강 유역에서 약탈 및 침략을 일삼던 군벌 세력 중 하나였는데 1231년 몽골 장수 [[살리타이]](ᠰᠠᠷᠢᠳᠠᠭ, 撒禮塔)의 공격을 받고 몰락했다. 참고로 언급했던 여진족 잔당 중에서 '황기자' 가유를 제외하고, 동하와 이들 중 한 세력이 [[여몽전쟁]]의 빌미가 되는 [[저고여 피살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일단 피살 위치가 동하의 땅인데다가, 마침 이들이 동하의 군벌들이기도 해서 그 관련 세력을 범인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