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치제 (문단 편집) === 죽음 === 동치제는 성년에 가까워지자 황제로서 친정을 하기 위해 어머니에게서 실권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서태후]]가 그의 아내 [[효철의황후]] 알루터씨(孝哲毅皇后 阿魯特氏)를 싫어했기에 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 탓에 정무에 흥미가 사라진 동치제는 유흥과 색에만 열중하다가 [[천연두]]로 인해 만 1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일설에는 열병으로 죽었다고도 하고, 실권을 가져오려다 실패한 후 어머니 서태후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아들을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하자 실의에 빠져 [[집창촌]]을 돌아다니다가 [[매독]]에 걸려 죽었다고도 한다.[* 이 내용은 [[마오쩌둥]]의 [[주치의]]였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리즈수이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리즈수이의 조상이 동치제를 치료한 황실 어의였는데, 동치제가 유곽을 즐겨 다니면서 창녀들과 음란한 놀이를 즐기다가 매독에 걸렸다고 말하자 서태후가 분노하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청나라 최후의 환관 중 하나였던 신슈밍이 지은 책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에서는 동치제가 매일 밤마다 환관들이 입는 평상복을 입고 심복으로 부릴 환관 하나와 함께 유곽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에 환관 중 하나가 그러지 말라고 간언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환관들은 이 소식을 [[공친왕]]에게 알렸고, 공친왕 역시 유곽에 드나드는 것은 황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으나 동치제는 '''"네 장남'''(공친왕의 장남은 연극 관람 등 노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단순 극놀이 보면서 노는 것과 유곽이 같은 레벨은 아니지만.)'''이나 똑바로 관리해라"'''고 일갈하고는 무시했다고. 세간에 병명이 천연두로 알려진 것은 어의가 차마 황제가 성병에 걸렸다고 고하지 못하여(....) 우물쭈물하다 천연두라고 둘러댄 탓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의 야사에 의하면 동치제는 1류 유곽에 가면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소문을 낼까봐, 2류 유곽에 가면 중하급 관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소문을 낼까봐 일부러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3류 유곽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https://m.blog.daum.net/shanghaicrab/16157674|#]] 당연하지만 3류 유곽일수록 허름하고 질도 안 좋아서 성병 노출 위험도 커진다.] 동치제가 후사를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안그래도 불안정한 청 조정에는 비상이 걸렸다. 결국 당시 황실 최고 어른이었던 [[효정현황후|동태후]]와 서태후는 동치제의 3살짜리 사촌인 애신각라 재첨을 황제로 올렸으며, 이가 바로 [[광서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