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양방송 (문단 편집) == 특징 == 1964년 개국 당시부터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에 따른 신문-방송 겸영 금지를 이유로 [[한국방송공사|KBS]]에 넘어갈 때까지 국내 방송계를 주름잡았던 대형 방송사였다. 텔레비전 방송은 서울과 수도권, 부산 및 일부 동남권이 주 시청권역이었으며, 라디오 방송은 제휴를 맺은 지역 민방들을 통해 호남(중파방송 한정) 및 대구·경북 지역(FM방송 한정)에 일부 방송을 송출했었다. 의외로 전국구가 '''아닌''' 방송국이었다. 이는 당시 TBC의 논조가 당대의 명 앵커 [[봉두완]]이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냈을 정도로 방송 3사 중에서 상대적으로 정부 비판적인 논조를 띠었고,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게 수시로 밉보였기 때문인 것하고 연관이 있다.[* 물론 정부 비판적이라 해도 대놓고 비판적인 논조를 취한 거냐면 그건 또 아니다. 검열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안 받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덕택에 전국 단위로 방송을 송출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당국에 의해 번번이 퇴짜만 맞았고, 심지어 부산동양방송으로의 TV M/W 송출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산동양방송에서 송출하는 각종 프로그램(특히 드라마)는 서울 본사에서 저장매체([[비디오테이프]], [[릴테이프]] 등)로 공수해서 방송했고, 서울보다 1주일 늦게 편성되어야 했다. 뉴스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부산지국의 뉴스는 서울과 완전히 별도의 자체제작이었다. 라디오의 경우 부산에 지국이 있었고 호남권의 경우 [[서해방송]](군산), [[전일방송]](광주)과 제휴하여 커버했다. 결국 동양방송 시절에는 진정한 의미의 전국방송을 할 수 없었고, 언론통폐합 이후가 되어서야 [[KBS 2TV]]를 통해 전국 방송이 된다. 그렇지만 동양FM이었던 [[KBS 2FM]]은 수도권만 방송되고 있고 그 외 지역은 음악FM채널 하나만 신설되고 1FM, 2FM 프로그램을 혼합 편성했으나 2001년 2FM 광고편성 이후 1FM 프로그램만 내보내고 있으며 이후 DMB [[U-KBS MUSIC]]과 지역 2라디오 일부 시간대에 2FM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송출 중이다. 그래서 당시 (주)[[문화방송]]·[[경향신문]]이 [[5.16 장학회]]가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친정부 논조를 강하게 띄어서 정권 차원에서 열심히 밀어주었기 때문에 전국 방송화가 신속하게 진행되었던데 반해서, 동양방송은 방송사가 KBS로 흡수될 때까지 TV 방송 권역이 수도권 및 동남권으로 제한되었다. 그러다 보니 1970년대 중후반에는 전국구로 방송을 송출하게 된 MBC에게 제2의 TV 방송사 자리를 내주었다. TBC가 삼성그룹이 소유했기 때문에 간과하기 쉬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자본력에 있어서 MBC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사실 MBC가 전국방송화가 되는 과정에서 주요 대기업들의 지분투자를 받았던데다가,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지방 MBC]]의 경우에는 주요 대기업들이 지분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현대그룹]], [[쌍용그룹]], [[럭키그룹]]이 대표적인데, 이중에 현대그룹과 럭키그룹은 4대 재벌그룹에 들 정도로 대 재벌그룹이었다. 거기에 정권이 뒷배에 있었으니 당연히 자금력에 있어서 오히려 MBC가 앞서있던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로 당시 DBS [[동아방송(라디오)|동아방송]]에서도 서울 이외 지역에서의 송출 및 TV 방송을 하려고 했지만 당대에는 [[동아일보]]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의 일명 야당지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퇴짜만 맞았다는 후문도 있다. 여담으로 [[삼성|삼성그룹]] 호암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가지 않은 경제인으로도 유명했는데 연령에 있어서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보다 더 먼저 출생한 1910년생이었고, [[경상남도|경남]] [[의령군|의령]]의 [[유교]] 가문에서 자라와서 유교의 전통관습이 몸이 베여서 자신보다 더 늦게 출생한 박 대통령 앞에서 새해 인사를 하기에는 [[장유유서|그렇기 때문]]이라는 일설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러한 사유도 있어서 찍힌 것이 아니냐고도 한다.[* 이병철 vs 정주영, 홍하상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 刊][* 다만 박정희 대통령도 경북 출신에 옛날에 사망한 사람이라 그런지, 굳이 문제 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차남 이창희가 청와대에다 아버지 이병철을 고발하는 탄원서를 내자,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냐며... 이런건 천륜을 어기는 짓이라며 처벌을 거부했다. 오히려 이병철 회장에게 도로 알려줬을 정도.][* 하지만 자신보다 한참 늦게 출생한 [[전두환]]의 신군부 앞에서는 오히려 박정희보다 공포의 대상이었던지라...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언론 포기 각서에 서명하게 되었다.--아니면 뭐 이건희 시켰겠지--] [[중앙일보]]와 동일한 [[삼성|삼성그룹]] 계열사였으며 1974년 동양방송·중앙일보 합병 당시부터 1980년 언론통폐합 관계로 인한 동양방송 폐국 당시까지 중앙일보와 동일 법인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라디오 시보 협찬 대부분이 [[삼성|삼성그룹]] 계열의 광고였다. [youtube(6IKfxV2iDkM)] > 광고(여자): ...니콜라이 모던 발레단이 미 국무성[* 당시에는 해외 뉴스를 일본을 통해서 받았기 때문에 저렇게 불렀다.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국무부]]로 쓰고 읽는다.] 문화 사절단으로 5월 11일, 13일 국립극장에서 역사적인 내한 공연을 갖습니다. 모던 발레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세기의 안무가 알윈 니콜라이가 이끄는 니콜라이 모던 발레단은 빛과 율동의 환상적인 종합 예술로 벌써부터 국내 무용계에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니콜라이 모던 발레단의 관람권은 본사 문화사업부, 시내 각 예매처에서 절찬 예매 중입니다.[* 이 공연에 대해서는 [[중앙일보]] 웹페이지에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35842|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해당 자료가 1976년 것임을 알 수 있다.] >시보멘션(여자): 89.1MHz, 즐거움과 안식의 샘, 동양FM 방송입니다. HLKC FM. >시보광고: 이코노 이코노 이코노~ 텔레비전은 이코노![* 삼성전자 최초의 순간수상방식 텔레비전 상표명. [[삼성전자/역사]] 문서에 해당 제품에 대한 내용이 있다.] >시보멘션: 삼성전자 제공시보, 다섯 시를 알려드립니다.(시보음~♪) >방송멘션: (오프닝 음악) 학생들의 노래 경연 학생 콩쿨... 1976년 방송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FM 라디오 시보. [[삼성전자]] 또는 [[SWC(기업)|삼성시계]][* 이름처럼 시계를 제조하는 [[삼성그룹]]의 당시 계열사. 이후 1988년 2월부터 1997년 8월까지 [[MBC 뉴스데스크]]의 시보 스폰서로 맡았으며, 현재는 [[https://ko.wikipedia.org/wiki/SWC_(%EA%B8%B0%EC%97%85)|SWC(Samsung Watch Company)]]라는 명칭으로 변경 후 삼성그룹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독립하였다.]가 주로 시보 스폰서를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youtube(ZPyJGt-uJ2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