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동북역치 (문단 편집) === 장쉐량의 딜레마 === >"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동으로도 갈 수 있고 서로도 갈 수 있는데 아침에는 이쪽으로 기울고 저녁에는 저쪽으로 기운다." >---- >장쉐량 흔히 아버지를 죽인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에 불타던 장쉐량이 장제스와 손을 잡았다는 식으로 쉽게 설명되지만 실제론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쉐량의 영지인 만주는 압록강만 건너면 바로 일본제국령 조선과 맞닿아 있었고 일본은 [[러일전쟁]] 이래로 만몽 지역에 대한 이권 확보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오고 있었다. 인접한 열강인 일본을 그리 자극한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만주의 여론도 분열되어 있었다. 장쉐량의 경쟁자인 만주 신파는 일본의 침략 야욕에 대항하기 위해 청천백일기를 게양함으로 국민정부에 대한 복종과 민족주의의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장쉐량의 지지층인 구파는 만주의 자치를 주장하고 있었다. 솔직히 장제스와는 얼마 전까지 전쟁을 하던 사이였고 일본은 반공을 빌미로 만주의 반공 군벌들을 회유하고 있었다. 장쉐량의 입장에선 장제스를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대책없이 의존하는 것 역시 불안하기 그지 없는 선택이었다.[* 앞서 보았듯 일본은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장쭤린을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사적으로도 부친을 죽인 원수인 일본을 믿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중국의 여론이란 청일전쟁 이래로 중국을 침탈해온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고 섣불리 친일 정책을 취했다간 정권에 위협이 갈 정도였다. 만약 장쉐량이 일본과 손을 잡았다간 만주는 물론 전 중국의 민중의 비난과 반발을 사는 것은 물론, 만주의 반일 인사들에게 정권을 찬탈당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할 수 있었다. 고심 끝에 장쉐량은 장제스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장제스라고 마냥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장제스에 대한 접근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거기에 일본을 지지하던 만주 구파에 대한 배려 역시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