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역치 (문단 편집) === 역치 선포 === 12월, 장제스는 [[장췬]], [[우톄청]], [[리스쩡]]을 보내 장쉐량을 정식으로 동북병방군사령장관에 임명했고 12월 25일,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사람을 보내 동삼성은 국민정부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1928년]] [[12월 29일]], 장쉐량은 [[완푸린]], [[장쭤샹]]과 연명으로 역치통전을 타전했다. ||[[장쭤린|고 대원수]]는 임종에 즈음하여 거듭 화평을 주장하고, 통일촉진을 유촉으로 삼았다. [[장쉐량|나]]는 고 대원수의 유지를 이어 받아 통일을 꾀하기 위해 노력하고 화평을 관철하려 한다. 오늘부터 삼민주의를 준수하고, 국민정부에 복종하며, 기치를 바꿀 것을 선포하는 바이다.|| 국민정부가 즉시 답전했다. ||제형이 당과 국가에 대한 지지 협력을 표시한 정신에 경복하고 감명을 받았다. 앞으로 내부를 수습하고, 외부에 대처하며 갖가지 건설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겠지만, 민생을 안정시키고 정치를 궤도에 올리기 위해 제공과 함께 노력하기 바란다. [[장제스|중정]].|| 29일 오전 7시, 봉천, 길림, 흑룡강에 일제히 공안국이 배포한 청천백일기가 게양되었고 장쉐량은 봉천성부 대강당에서 중앙에서 파견한 대표 방본인과 일본을 제외한 각국 영사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역치대전을 거행하였다. 장쉐량은 일본의 [[대정봉환]]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내가 역치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은 [[일본 제국|한 선진국]]의 예를 본 딴 것이다. 그 나라에서는 처음에 [[에도 막부|군벌]]이 권력을 조종하여 중앙의 통치를 방해했기 때문에 국가는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 후 군벌이 각성하여 [[대정봉환|중앙에 대정을 봉환]]했기 때문에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나는 지금 중앙의 권력을 나누어 받는다는 따위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권을 모두 중앙에 반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통일을 꾀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장제스는 감격에 찬 일기를 남겼다. ||금년 9월 이래 일본이 이토록 강포하고 야만스런 압력을 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동북 군민의 중앙에 귀속하려고 하는 단성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북벌서사로부터 3년이 못되는 사이에 드디어 통일사업이 완성을 보았다는 사실은 삼민주의가 모든 것에 승리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일본이 침략 야심에 아무리 광분할지라도 우리 중화민국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12월 31일, 국민정부는 장쉐량을 동북 변방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열하성을 동북삼성에 추가하여 동북사성으로 하였다. 이날 저녁, 하야시 규지로 총영사가 장쉐량을 방문하여 2시간 동안 회담했다. 하야시 총영사는 "돌연한 역치는 단교와 같다. 일본은 장쉐량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단호한 조치로 나올 수도 있다."라며 테이블을 치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장쉐량은 어쩔 수 없다면서 하야시의 항의를 무시했다. 이에 하야시는 장쉐량이 만몽의 철도 권익에 관해 일본에 양보함으로 일본에 대한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했지만 장쉐량은 외교 문제는 모두 중앙의 권한이라고 묵살했다. 이미 본국도 역치를 관망하기로 한 터라 하야시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