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공정 (문단 편집) == 대응 == 사실 대응하지 않아도 [[고구려]]의 경우는 [[한국사]]의 범위 안에 속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는 꾸준히 고구려를 한국사로 인식[* [[삼한일통]]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 동질 의식을 느꼈으며 [[고려시대]]에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이 저술되었다.]했지만, [[중국]]은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찬한 적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옛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에 사는 사람들을 동쪽에 사는 이민자들을 비하하는 멸칭, 즉 동이라고 불렀다.[* 다만 고구려도 삼국시대 초중반기에는 신라를 동이족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또한 전통적인 중국의 한국인 비하 표현인 가오리방쯔를 생각해보자. 이미 한국을 고(구)려놈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에서 한국이 고구려 후손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을 비한자문화권 국가들이 부르는 명칭은 고(구)려에서 기원한 "KOREA"다. 물론 왕건이 세운 고려로 인해 퍼지기 시작한 명칭이지만, 왕건의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대내외적으로 피력하고 인정받았기에 현대 한국이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고구려를 전통적으로 중국사로 여기지 않았으나, 현대에 들어서서 자국사로 편찬하려는 이중적인 행동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고구려]]의 지리적 측면에서 봐도 [[고구려]]의 인구는 [[한반도]] 내 대동강 유역 평야 지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구려가 만주 지역을 꽤 많이 차지한 것, 그리고 오늘날의 한반도 쪽 영토보다 중국 쪽 영토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은 [[4세기]] 말까지 가서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한반도 쪽에 대부분의 영토를 두고 있었다. 건국 초기부터 함경도 쪽의 옥저, 강원도 쪽의 동예를 자국의 영역에 편입해 나갔는데 이는 북쪽에서 강국인 부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북쪽 땅은 춥고 척박했으므로 비교적 기름진 서북한의 평안도, 황해도보다는 쓸모가 덜 했다. 때문에 후반기에 가서는 만주보다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나라로 변모했고 주요 3경 중 2개가 평안도, 황해도에 있었다. 수도들 또한, 졸본과 국내성은 중국령이라고는 하나 압록강과 거의 붙어있는 수준으로 가깝고 평양은 현재 북한의 수도다.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이질성이 있었다고 해도 연관이 없다고는 볼 수는 없고[* 고조선과 고구려는 둘 다 예맥 집단이고 삼한과 신라의 경우 고조선계 예맥집단의 남하가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 무관한 집단이 아니다.] 연관은 있되 이질적인 집단이 정체성 융합을 통해 단일민족 집단이 되는건 흔한 일이다.[*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경우 서로 문화적 지리적으로 외부세력까지 끌어들여서 서로 갈등을 일으켰고, 정주민의 속성이 약하고 유목이나 목축, 수렵채집을 기반으로 하는 여진족, 몽골족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한족]]도 다를바 없다.] 이러한 정체성 융합은 적어도 삼국시대 말기부터 시작해서 고려시대 중후반까지 진행되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중국은 오히려 한국보다도 불리하다.[* 현 중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의 경우, 서로 이질적인 문명이었던 [[황하 문명]](화하족)과 [[장강 문명]]의 융합으로 형성되었다. 고고학적으로 춘추시대의 오, 월, 초는 황하문명이 아닌 장강문명에서 독자적으로 발흥했지 중원의 주나라에서 나온것이 아니다. 당장 장강 문명 출신인 항우의 학살 행위도 장강 문명과 황하 문명간의 이질성에서 기원했다는 의견도 있다. 거기에 동쪽의 제, 서쪽의 진 조차도 주나라는 이민족이라 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이의 개념도 초기에는 산동반도부터가 시작이었다. 거기에 [[파촉]]의 [[삼성퇴 유적]]과 [[바오둔 문화]], [[요동]]의 [[홍산문화]]도 본래 중원과는 이질적이었으나 나중에 점차 하나가 된것이다.][* 프랑스, 독일도 다를바가 없다. 갈리아족도 동족의식을 가진 하나의 개념이 아닌 여러 종족을 규정한 그 지역민의 통칭이었으며 독일 역시도 현대의 게르만 민족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과거에 끼어 맞추다가 모순이 생기기도 한다.] 이에 대응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북한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등재를 남북 협력으로 진행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0066908|#]] 또한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구려 연구재단(현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설되었으며, [[반크]] 등의 민간단체 활동도 증가하였다. 2006년도 후반에 [[MBC]] 공익 예능 [[느낌표(MBC)|느낌표]]의 <위대한 유산 74434>에서 재조명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북공정 반대 운동이 있었으나 얼마 안가서 관심이 식어 묻히게 되었다. [[발해]] 역시 마찬가지로 고구려인이 세운 나라로, 처음에 건국할 때부터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라고 공문서와 기타 외교 문서에 적혀 있다. 물론 발해의 경우 사료 부족으로 인해 그 성격이 완전히 규명되지 못했고 지리적으로도 고구려와 달리 한반도보다 만주와의 연관이 깊지만 어찌되었든 국내 학계에서는 발해를 한국사로 넣어도 무리없다는 시각이 우세한 형편이며 외국 학계에서도 경계사로는 바라보나 고구려 계승 등 한국적 속성을 부인하지 않고 배타적인 한국사는 아닐지라도 한국사의 일부로 수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한국]]에서는 공식적인 역사 교육에서 동북공정에 대응하는데 [[발해]]에 대해 중국에서는 [[발해]]를 말갈족의 나라고, [[고구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라고 주장하나 한국 교육에서는 외교 문서와 고려와의 연관성을 근거로 들어 동북공정을 비판하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문왕(발해)|문왕]]과 [[무왕(발해)|무왕]]의 외교 문서에서 [[발해]]가 [[고구려]] 영토의 부여 민족이거나 발해왕이 고려 국왕이라고 주장한다. 멸망 후의 경과에 대해서도 [[고려]] 왕조가 발해 유민들을 다수 수용하였고 고려가 발해를 형제국으로 여겨 거란을 배척했다는 점을 들어 발해와 고려는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이미 없어진 나라다.''' [[한국사]]와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는 엄밀히 말하면 다르고, [[중국사 관련 정보|중국사]]와 현재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도 엄밀히 말해 다르다. 거주한 땅과 민족만 같을 뿐 다른 체제의 수많은 국가들이 존재했다가 멸망했기 때문이다. 즉, 고조선은 고조선의 역사고, 고구려, 발해도 각각 고구려, 발해의 역사고, 중국 대륙에 있던 한나라, 당나라, 청나라 등도 모두 한, 당, 청의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중국이 건국되기 한참 전에 멸망한[* 1000년이 넘었다.] 국가들을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영토를 전체 또는 일부 공유했을 뿐 현재의 국가들과 전혀 다른 나라들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