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명성왕 (문단 편집) === 이름 === [[휘]]는 매우 다양한 기록이 있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직접 남긴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鄒牟)로 쓰여 있으나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이름을 서로 다른 한자로 [[음차]]해 놓은 것이다. 첫 음절의 초성이 /t/이고 두 번째 음절의 초성이 /m/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 [[교수]]는 이 이름의 첫 음절을 *tjoh(둏)으로 재구하기도 했는데,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뛰어남', '좋음'의 의미를 가려낸 뒤, 이를 '좋다'의 중세 한국어 형태인 '둏다'와 연관 지은 것이다. 그러나 주몽의 시대가 워낙 오래 전이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둏다'를 됴+하다로 형태소 분석해서, 지금은 불분명해진 [[상고한어]]나 [[중고한어]] 단어와의 합성어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됴'라는 음가를 지니며 '좋다'라는 뜻을 가진 상고 한어 어휘는 현재까지 규명된 바 없기에 확실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의 말음 'ㅎ'은 고대로 가면 'k' 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 '*tjoh'이 아니라 '*tjok'[* 이렇게 발음한다면 화살 촉의 [[촉]]과의 연결고리가 발견된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보빈은 '주몽'의 '주' 부분이 '좋-'의 어원으로 보았다. 하지만 '몽' 부분은 오리무중이라고 했다. 그 어떤 한반도 주변의 언어에서도 궁수와 관련해서 'mV' 형태의 단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화살'을 의미하는 [[에벤어]] 'миир(미르)'나 '명사수'를 의미하는 [[만주어]] 'ᠮᡝᡵᡤᡝᠨ(머르건, 墨爾根로 음차됨)'이 m- 계열이긴 한데,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적다. 특히 만주어 'ᠮᡝᡵᡤᡝᠨ'은 고유어가 아니라 [[몽골어]]/[[튀르크어]] 'ᠮᠡᠷᠭᠡᠨ([[메르겐]])'에서 온 외래어다.] 한편, [[상고한어]] 시절에 '조(朝)'의 발음이 백스터-사가르의 재구음으로 't(r)aw'로 [다우] 내지는 [드라우]인 것으로 보아, '(고)조선'의 '조'와 '주몽'의 '주' 모두 같은 단어(보빈의 견해대로라면 '좋-'의 고어형)를 음차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조선(朝鮮)'이 음차 표기가 아니라 '아사달'을 훈차한 표기라는 주장도 제기되므로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사달]] 항목 참조. 대중적인 '주몽'이라는 이름은 우리 고유어를 한자로 음차할 때 일부러 "朱蒙" 자를 쓴 이름이다. 일부에서는 고주몽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난쟁이 주(侏)"이며 '몽'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우매할 몽(蒙)"을 쓰기에 중국 쪽이 추모왕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주몽의 朱와 난쟁이 侏는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이고, 蒙자는 역사적으로 [[여몽|중국인 이름]]에도 쓰인 예시가 있기 때문에 과도한 꿰어맞추기라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한자는 글자 하나마다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으며, 그 중에서 굳이 나쁜 의미만을 찾아서 그쪽으로 해석하고 트집 잡는 건 [[문자의 옥|청나라 황제들이나 하던 일]]이다. 만일 중국 측에서 정말 비하적인 의도로 추모의 이름을 주몽으로 바꾼 것이라면, [[소서노]]의 奴도 음차할 때 비하적인 목적으로 일부러 [[奴]](종 노) 자를 사용한 결과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소서노는 중국 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삼국사기 등 국내에 현전하는 사서 몇 권에서만 전해지는 인물이다. 또한 고구려 인명중에서 奴(종 노)를 사용하는 인명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서 유리왕 때의 신하 [[부분노]]도 있다. 게다가 삼국사기나 일본서기에서 등장하는 고대 한인이나 왜인의 인명 중에서도 [[奴]], [[尸]](주검 시) 등의 부정적인 한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주장은 신빙성이 그리 높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고대의 노(奴) 관념이 현대애서 받아들여지는 늬앙스냐라는 질문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다. 참조 : 이영훈 고대의 노(奴) 관념 ] 따라서 주몽을 의도적으로 비하했다는 논리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당대 고구려인들이 작성한 금석문에서는 일관적으로 추모로 칭해지기 때문에 주몽이 아닌 추모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바람직하다. 생부인지 계부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동명성왕 추모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도 몇몇 고구려, 백제 계열 성씨의 조상으로 나타나며, 여기선 '도모'(都慕)라고 기록되어 있다. || '''표기''' || '''현대 한국어 발음''' || '''상고한어 재구음''' || '''등장 사료''' || '''비고''' || || '''鄒牟''' || 추모 || *[tsʰ]ro mə[u][* 영문판 윅셔너리에 백스터-사가르가 재구한 모(牟)의 상고음은 나오지 않으나 중국어에서 모(牟)의 한자음을 厶(사, 모)에서 취했고 厶(사, 모)는 한자어 모(某)의 이체자로 쓰이며 백스터-사가르가 재구한 모(某)의 상고한어 재구음이 *məʔ임을 보면 고구려어 한자음으로 모(牟)는 mu가 아닌 mə에 가까운 발음이었을 것이다.] (백스터-사가르)[br]*zro mu (정장상팡) || 《[[삼국사기]]》, [[광개토대왕릉비]], 〈[[모두루]] 묘지명〉 || 고구려 공식 표기. || || '''朱蒙''' || 주몽 || *to mˤoŋ (백스터-사가르)[br]*tjo moːŋ (정장상팡) ||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br]《[[동사강목]]》, 중국 사서 || 중국의 왕조들이 기록한 이름. || || '''中牟''' || 중모 || *truŋ mə[u] (백스터-사가르)[br]*tuŋ mu (정장상팡) || 《삼국사기》 || 《삼국사기》 〈문무왕 본기〉에만 등장. || || '''仲牟''' || 중모 || *truŋ-s mə[u] (백스터-사가르)[br]*duŋs mu (정장상팡) || 《[[일본서기]]》 || || || '''都慕''' || 도모 || *tuo muo (중고한어)[* 해당 표기의 출전인 《신찬성씨록》은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인 [[815년]]경에 편찬되었으므로 상고한어 대신 중고한어 한자음을 적용하는 것이 적합한 듯 보인다. 그러나 백제 유민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온 걸 옮겨 적은 것이므로 기록 자체는 더 오래 전에 된 것일 수도 있다.] || 《신찬성씨록》 || 일본어 음독은 당시 오음으로는 투모(つも),[* 현대 일본어에서는 '츠모'라고 발음되나, 상고 일본어에서는 [[つ]]가 지금의 /tsu/가 아닌 /tu/로 발음되었다는 설이 정설에 가깝게 자리잡은 이상 '투모'라고 읽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한음으로는 토보(とぼ). 고대에는 오음이 주로 쓰였다. || || '''鄒蒙''' || 추몽 || *[tsʰ]ro mˤoŋ (백스터-사가르)[br]*zro moːŋ (정장상팡) || 《삼국유사》 || 《삼국유사》 〈왕력〉편에만 등장. || || '''朱背''' || 주배 || *to m-pˤəks (백스터-사가르)[br]*tjo bɯːɡs (정장상팡) || 《신찬성씨록》 || || || '''衆解''' || 중해 || *tuŋ-s kˤreʔ (백스터-사가르)[br]*tjuŋs kreːʔ (정장상팡) || 《삼국사기》 || || || '''象解''' || 상해 || *s-daŋʔ kˤreʔ (백스터-사가르)[br]*ljaŋʔ kreːʔ (정장상팡) || 《삼국사기》 ||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