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군 (문단 편집) ==== 카발라리오스(Caballarius) ==== 동로마군에는 흔히 '''라티니콘'''이라고도 불리우는 서유럽인 용병기사들이 있었다. 12세기의 절정기를 거쳐 13세기의 쇠퇴기를 맞이하는 동안, 제국 내에 거주하는 프랑크계 기병의 숫자는 크게 증가했다. 그것이 성지순례를 가다가 눌러앉은 독일인이건, [[4차 십자군]]의 잔당인 프랑스인이던, 콤니노스 왕조 시기의 군대에서 복무했다 정착한 노르만인이던 간에 14세기경 콘스탄티노플을 복구한 제국에게 있어서 서유럽식 중기병 전력은 절실했다. 초기에는 단지 기병을 모두 뭉뚱그려 부르는 단어였던 카발라리오스는 14세기경부터는 뚜렷하게 서유럽적 의미의 기사만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규모가 어느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1차례 이상 라티니콘 기사가 동로마 제국의 군사령관을 맡아 서유럽인을 상대한 적은 있었으며, 이들을 통솔하기 위한 직책인 메가스 코노스타울로스라는 비상설 직함이 존재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3차 십자군]] 원정에서 왕이 될 뻔했던 몬페란드의 콘라드도 [[이사키오스 2세]] 시절 제국군에서 라티니콘 기사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카탈루냐 용병]]들이 일으킨 사건[* [[카탈루냐 용병]]들은 동로마 제국에서 고용한 [[카탈루냐]] 지역 출신의 용병들인데,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지만 제국에서 제때 돈을 주지 않은데다가 대장이 알란족 용병들에게 살해당하자 폭발, 칼리폴리 반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과, 세르비아, 불가리아의 남하, 베네치아의 이권 상실에 의한 왕래 중단등과 합쳐져 프랑크 출신 기사들은 콘스탄티노플에 흥미를 서서히 잃게 되었고, 이에 더해 제국이 계속해서 축소되는 15세기경에는 이러한 기사들에게 봉급을 줄 형편도 되지 않아, 결국 이런 부대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물론 제국도 정예병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기에 병종 자체는 제국 멸망때까지 존속하긴 했을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