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녕국 (문단 편집) === [[조선]] === 당시 조선은 제18대 [[현종(조선)|현종]]과 제19대 [[숙종(조선)|숙종]]이 재위하고 있었던 시기였으며, 대만 섬에 있는 동녕국을 [[대번국]](大樊國)이라고 표기하는 등 그 존재는 알고 있었다. [[삼번의 난]] 당시에 북벌을 위해서 동녕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고 청나라가 [[삼번의 난]]을 결국 진압하고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다. 현종 11년(1670년)에 중국 옷, 오랑캐 옷, 일본인 옷을 입고 있는 무리들 90여 명이 [[제주도]]에 표류한 바 있었는데 이들이 당시 제주목사 노정에게 동녕국과 중국 남부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들은 청나라가 중국 남부를 석권하자 만주족의 탄압을 피해 [[나가사키시|나가사키]]로 도망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으며, 이에 제주목사는 그들을 나가사키로 보냈다고 한다.(출처: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그러나 중국이나 대만 쪽 학자들 중에서는 조선이 이들을 청나라에 송환했고, 결국 청나라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주장도 있는 듯하다. 한편 조선 일부에서는 동녕국이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복속한 조선을 벌하러 쳐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는데, 이 소문이 비기인 《[[정감록]]》에 등장하는 [[정도령|정진인]]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실록보궐정오]]》에 기록된 운부, [[장길산]]의 모반 기사를 보면 정진인을 '해상(海上)의 정씨(鄭氏) 성(姓)을 가진 자'라고 하여 정성공 가문임을 암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