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국통감 (문단 편집) == 내용의 특징 == >上下千四百年前者覆而後者戒彙稡五六十卷義欲正而辭欲嚴 >위아래로 천사백 년 동안 앞 사람의 실패가 뒷 사람의 경계함이 되게 하였고, 모아놓은 오륙십 권의 책은 의(義)에 대해서는 바르게 하려고 하였으며, 이야기는 엄정히 하려고 하였다. >---- >'''『진동국통감전(進東國通鑑箋)』[* [[동국통감]]을 올리는 전(箋)이라는 뜻으로, 현대의 [[서문]]에 해당한다.], [[서거정]] 등 ''' 내용은 크게 [[고조선|단군조선]]에서 [[삼한]]까지를 외기(外紀), [[삼국시대]]에서부터 신라 [[문무왕]] 때까지를 삼국기(三國紀), 문무왕부터 고려의 건국 까지를 신라기(新羅紀), 이후 고려말까지를 고려기(高麗紀)로 나누었다. 외기는 [[단군]]이 단군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하는 기원전 2333년, 즉 [[단군기원]]이 최초로 제시된 역사서이다.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외기로 처리해버린 것은 15세기 당대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고대 왕조들이 남긴 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삼국시대 이전의 내용은 체계적인 왕조사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객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 기록은 현재에도 부실하고 삼국시대 기록마저도 국내 기록으로는 부족해 일본의 기록까지도 참고해야 한다. 일본서기 같은 책은 역사왜곡이 심하지만 고대사 자료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삼국기의 경우 기존 역사서들과 얼마전 만들어진 권근의 [[동국사략]] 등과는 달리, [[신라]] 중심 서술을 뒤집고 처음으로 삼국이 대등하다는 균적론(均敵論)을 내세웠다. 이는 세종 시대부터 이어져온 인식으로 세종이 삼국의 시조들 중에서 신라의 조상에게만 제사를 지내자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삼국 모두의 시조들에게 제사를 지내었다. 연대 표기 또한 동국사략과는 달리 당대에 쓰이던 대로 즉위년칭원법(卽位年稱元法)을 사용했다. 새 왕이 즉위한 바로 그 해부터 왕의 즉위기간으로 치는 방법. 유교적 예법에서는 유년칭원법이라 하여 선왕이 죽고 새 왕이 즉위한 해는 선왕의 재위기간으로 잡고, 그 다음해부터 새 왕의 즉위기간으로 계산한다. 이처럼 그 당시 썼던 것들을 사실 그대로 온전히 보전했다. 대신 신라기를 따로 독립시켜 신라 통일의 중요성과 그 의미는 확실히 부각시켰고 [[발해]]는 한국사로 포함하지 않았다.[* 발해를 한국사로 보는 시각이 비로소 등장하는 것은 조선 중기고, 그나마 후기에도 발해가 한국사라고 보는 [[유득공]] 등과 아니라고 보는 [[안정복]] 등이 양립했다.] 참고로 한반도 국가들이 가진 전쟁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와 논평을 하지 않았다. 기성 역사서대로 정치/외교사가 주를 이루고 전쟁 이야기도 상벌의 기준이나 내부의 문제와 같은 정세판단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로 하지 전쟁사의 기록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시성 전투]], [[황산벌 전투]], [[기벌포 전투]]의 승리나 [[김경손]]의 결사대의 활약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본시 역사서의 편찬도 유학자들이 말하듯 문무의 도는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듯 전쟁사가 구체적으로 적히지 않은 것은 아쉽다. 전쟁만 치르고 다닌 요나라의 역사서 [[요사]]나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전쟁 기록이 많은 편이다. 국방부에서 역사 교육을 가르칠때 [[귀주 대첩]]의 경우 [[고려사]]와 더불어 요사의 내용을 많이 참고로 한다. 조선 후기에는 동사강목이 이 문제에 대해서 보완을 하려했으나 자료 미비로 한계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동국통감 이전에 동국병감이 나왔으나 전쟁사를 다룬 동국병감 또한 서문이나 구체적인 기록이 동국통감은 아니더라도 미비한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동국통감 편찬 당시 문관 출신들과 혹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문관 출신들과 무관들의 참여를 제한해, 정치사 못지 않게 전쟁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꽤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대체로 동사강목에선 전쟁사에 대한 기록이 추가가 되었지만 자료 미비로 인해 보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후 현종 13년(1672)에 홍여하(洪汝河)가 [[동국통감제강]]을 편찬했다. 동국통감제강은 기존 동국통감을 [[주자(철학자)|주자]]의 존화양이(尊華壤夷)적 역사서술 방법으로 새로 구성한 것이다. 1644년 새롭게 중원의 지배자가 된 [[청나라]]를 오랑캐로 격하하고 몰락한 중국 대신 조선의 문화적 우월성과 국가 권위를 드높이려 한 것이다. 명나라에서 끝난 중국 제왕(帝王)의 정통을 신라 → 조선으로 연결하고 기타 다른 국가들을 신하나 찬탈자 형식으로 서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