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비도 (문단 편집) == 이 영화와 왕우는 왜 성공했는가? == 《독비도》는 국내에도 수입, 개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당시 아이들은 한쪽 팔을 옷의 안으로 넣어 배를 감싸 쥐고 빈 소매를 휘날리며, 다른 팔로 목검이나 막대기를 휘두르며 외팔이 무사 놀이를 했을 정도. 그때는 배가 좀 나오고 살집이 있으면 사장님 배라느니 하며 우대받던 시대였지만, 배가 나오면 [[외팔이]]를 할 때 팔이 너무 티가 나서 모양이 안 난다며, 또래 애들이 [[외팔이]] 역을 시켜주지 않아 싸움이 났다는 얘기가 부모님들에게서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인, 정확히는 홍콩과 동남아 등지의 화교들의 반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란(戰亂)과 극심한 치안부재의 역사 탓인지,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의심이 많은 사람에게, ‘너 뙤놈 빤스를 입었냐?’, ‘뙤놈 빤스 삶아먹었냐?’는 말이 사용되곤 했었다. 또한 장사나 도박 등에서 보이는, 이해득실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독함 역시 유명하다. 그런 중국인들에게 [[관우]]가 그리도 추앙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가 보여준 [[유비]]에 대한 [[의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의견도 많다. 자신을 후하게 대우해주는 [[조조]]를 뒤로 하고, 쫄딱 망한 [[유비]]에게 돌아간 [[관우]]의 모습이, 의리와 신뢰에 목마른 중국인들에게 어떤 임팩트를 주었을까,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독비도》의 방강은 어떤가? 집안 머슴의 자식인 자신을 사부가 거둬 무술을 가르쳐주었다지만, 그건 방강의 아버지의 목숨 값이나 다름없다. 사부의 딸 제패는 자신의 팔까지 잘랐다. 그런데도 방강은 그녀에게 보복하기는커녕,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강은 사부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되자, 반도(半刀)를 쥐고 달려가 목숨을 걸고 싸워 사부와 그 가족을 구해낸다. 이런 방강의 모습은, 당시 관객들에게는 관우가 떠오르게 하는 강렬한 느낌을 주었으리라. 이는 한국에서도 통하는 정서였던 듯, 수입제목도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이다. [[파일:external/www.soriaudio.com/2b3437d25106fc2a556e4a02e51f2677.jpg]] 그래서였을까? 상술했듯, 당시 왕우의 별호(別號?)는 “천황거성(天皇巨星)”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하늘의 황제와도 같은 큰 별’ 정도의 거창한 의미이다. 그러나 이 별호는 왕우나 쇼 브라더스가 붙인 게 아니라, 팬들과 언론이 만들어서 헌정하다시피 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