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립협회 (문단 편집) === 설립 ===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역적]]이 되어 해외로 도피했다가 미국에 귀화한 [[서재필]][* 해당 시점 기준 서재필은 미국인으로 귀화해서, 조선 내에서도 미국인인 필립 제이슨으로 활동했다. 독립협회나 독립신문에서 본인은 서재필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다. 필립 제이슨의 한자식 표기로는 피제손이다. 묄렌도르프가 목인덕이었던 것처럼, 필립 제이슨은 피제손이라고 했다.]은 조선을 장악하고 [[을미개혁]]을 진행하고 있던 과거의 개화파 동료 [[박영효]]의 초청으로 11년 만인 1896년 1월 사면을 받고 귀국한다. 이후 을미개혁을 진행하는 중추원의 고문이 된 서재필은 독립문 건립을 주장한다. 이후 박영효는 추방되고,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나서 친일파가 제거되면서 서재필을 지원해줄 이들이 조정 내에서 사라지지만, 독립문 건립만 주장한 서재필은 버틸 수 있었다. 이때 생긴 단체가 독립협회의 전신인 '독립문 추진 위원회'이다. 독립문 추진 위원회는 중추원 관료였던 서재필을 비롯해서, 외교 관료들의 사교클럽이었던 [[정동구락부]]가 주축이었고, 설립 과정에서 왕실의 자금까지 들어간 명실상부한 관변 단체였다. 그리고 1896년 4월 7일, 독립문을 만들기 위한 홍보 창구 겸 개화 정책 홍보용으로 만든 것이 바로 [[독립신문]]이다. 즉, 독립문을 만들기 위해서 독립협회를 만들었다. 독립협회의 1대 책임자였던 서재필은 독립문 건립을 홍보하는 한편으로, 개화를 좀 더 제대로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자고 주장하게 된다. 이 주장에 따라서 1896년(고종 33년) 7월 2일 한성부에서 조직된 것이 바로 독립협회이다. 창립총회에서 선임된 임원진은 고문에 [[서재필]], 회장에 [[안경수]], 위원장에 [[이완용]], 위원에는 [[김가진]], [[이상재]] 등 8명, 간사원에는 송헌빈, [[남궁억]] 등 10명 등으로 당시 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망라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