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립협회 (문단 편집) === 외세에 대한 이중적 태도 === 독립협회가 배제하고자 한 대상은 어디까지나 [[러시아]]였고, 일본이나 다른 [[영미권]] 열강들에게는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독립협회가 '이권 수호'라고 막은 대상은 주가 러시아였고, 가끔 프랑스와 독일이 포함된다. 그렇다, [[삼국간섭]]에 참여한 나라들이다.[* 러시아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지나 당시 프랑스도 영국과의 극동지대 이권 등으로 인해 일본을 견제하려던 조선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차관 제공, 고문단 및 기술자 파견, 은행 설립 추진(영일 측의 압박과 독립협회의 여론 몰이로 무산) 등을 했던 나라였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 일본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거나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특히 일본이 철도 부설권을 가져간 것은 당시에도 정치적 목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이 쏟아졌는데, 이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철도 부설권 양도의 결과는 이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신속하게 한반도를 거쳐 만주로 재배치되는 결과와, 작게는 한반도 내의 반일의병들을 신속히 괴멸시키는 일을 불러왔다. 독립협회 인사들은 각지에서 일어난 반외세, 반일 의병에도 부정적이었다. 고종 33년(1896년) 6호자 독립신문에서는 일본이 청나라와 싸워 이긴 덕분에 조선은 독립할 수 있었으니, 일본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논설이 실렸다. 또한 고종 34년 114호자 독립신문에는 사악한 청나라가 조선에서 쫓겨난 것은 하늘이 조선 백성에게 베푼 은혜이며, 35년 별호에서는 조선은 일본의 화폐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논설까지 실렸다. 이밖에도 독립신문은 일본에 저항하는 의병들을 도적(비도)이라고 모욕하는가 하면,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불세출의 천재이며 훌륭한 애국자라고 찬양했다.[* 출처: 어메이징 한국사/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234~235쪽] 또한 독립협회는 독자적인 군사력 강화에 부정적이었다. 이들이 바란 군사력은 '''동학이나 도적 같은 애들을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고종이 2척의 군함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해 근대적인 해군을 창설하여 국방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독립협회의 신문인 독립신문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데 무엇하러 [[군함]]을 들여오는가? 군대는 그저 도적떼나 평정할 정도의 소규모만 있으면 된다."라면서 극렬히 반대했다.[* 출처: 어메이징 한국사/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235쪽] 결과적으로 독립협회는 근대화를 덧씌운 일본의 제국주의에 너무 순진하게 대응하였다. 협회 해산 이후 일부는 독립운동에 가담했지만, 회원 중 조정 관료가 아니었던 인물 중에서는 이후 구축된 식민지 체제에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으로 협력한 인물이 많다. 독립신문은 고종의 4300원을[* (생계비1300 + 신문사창간비3000원)] 제외하면, 이후 독립협회 활동에서는 일본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의병을 찾아서>의 저자가 밝혀낸 자료에 의하면, [[일본 외무성]]과 일본 공사 등 일본의 정부 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온 약 1천만원의 자금이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으로 들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