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고구검 (문단 편집) == 독고구검의 창시 시기 == [[독고구패]]가 쓴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신조협려와 소오강호에서 보여주는 두 무공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과연 어떤 무공이 어떤 시기에 창시됐는가는 독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던져진 의문이었다. 이중 신조협려에서 나온 독고구패의 검법은 중검을 쓴 이후라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독고구검의 창시 시기만 결정하면 자연스럽게 독고구패의 무공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가도 유추할 수 있었다. 크게 중검 이전에 창시됐다는 설과 중검 이후에 창시됐다는 설로 구분되는데, 중검 이전에 창시됐다는 설은 나오자마자 쓰고 다녔다는 설과 도중에 창시했다는 설이 있으며 중검 이후에 창시됐다는 설은 중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과 독고구패의 최종 절학이라는 설 등이 있다. 오랫동안 중검 이전과 중검 이후라는 토론이 이어졌지만 중검 이후라고 주장하는 독자들은 '''"독고구검만큼 독고구패 무공의 진수인 무검승유검을 표현할 수 있는 절학이 독고구검일 수 밖에 없다"'''[* 사실 독고구검이 무검승유검을 표현할 수 있는 절학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은 신조협려에서 나타나는 독고구패의 성격과도 연관있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독고구패는 의인을 실수로 죽여 자미연검을 버렸고 그것이 중검무봉 대교불공이라는 것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독고구패의 이후 수련과정은 무학의 강함은 추구하되 살상은 최대한 자제하는 쪽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소오강호에서의 독고구검은 상대의 무기나 장력과 직접적인 충돌은 거의 없이 상대와의 대결이 진행된 점으로 볼 때 무검승유검과 잘어울리는 묘사라 볼 수 있으며 결국 자미연검에서 날이 없는 중검으로 살상력을 대폭 약화시키고 현철로 된 중검에서 목검으로 살상력을 낮추었고 목검에서 맨손으로 살상력을 낮추었다라고 추론해볼 수 있다. 사실 단순한 강함을 추구했다면 내공상승만을 추구했다면 해결 될 문제였다. ]라는 것이 중론이며, 중검 이전이라고 보는 독자들은 '''"독고구패는 소설 외부의 인물이기 때문에 굳이 창시 시기를 잡을 필요가 없으며, 중검 이전에도 패배를 몰랐기 때문에 비어있는 중검 이전 단계에 독고구검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주장이 많다. 양쪽 모두 타당성 있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지만, 소설의 내용을 기반으로 둔다면 중검 이후에 무검승유검에 이르러 완성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신조협려에서 현철중검을 두고 다른 검법은 필요치 않다라고 언급하는데 소오강호의 독고구검 역시 무초승유초 즉, 초식이 없다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철중검은 현철중검을 사용할만한 내력이 필요하고 무기에 의지해야 하지만 독고구검은 그런게 필요없다는 것을 보면 독고구검은 현철중검보다는 상위의 경지에 나온 절학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오강호에는 독고구패가 독고구검을 평생동안 썼다는 발언이 풍청양에게서 직접 나오며 독고구검을 출신입화로 익혔고 평생을 지지 않았다라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이는 청강장검~무검승유검의 신조에서 나온 검총에 새겨진 시기를 모두 포함하게 된다. 또한 무공이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무공의 초안을 잡고, 오랜세월동안 꾸준히 연마하여 노년에서 완성 시키는 경우가 존재 하기 때문에 . 신조협려에서 양과의 현철 중검술은 현철 중검이 아니면 사용이 불가능한 검술이고, 파도에서 훈련하여 완성 시킨 검술의 수준은 목검을 철검의 위력으로 끌어 올리는 검술이라기 보다는 내공 심법에 더 가까운 검법. 그리고 이는 소오강호에 나오는 독고구검에서 내공의 중심을 거론한적이 없던것을 살펴보면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은 결국 무검승유검을 이룬 독고구패가 최종정리한 효율적인 완성형 절학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중검의 무초라는것은 강맹한 힘으로 찍어누르는 무초이지, 소오강호의 무초랑은 거리가 멀다. 또한 소오강호의 무초의 경우 대다수가 상대 병장기와 충돌한 적이 없다는 것을 보면 상대병장기와 부딪혀서 무기에 의존하는 검술이 상위의 무학이 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독고구검을 제외하고는 상대 병장기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추측으로 독고구패의 검법을 익힌 양과가 독고구패를 기리기 위해 독고구검을 만들었다는 '''양과창시설'''도 존재한다. 신조협려는 남송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소오강호는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 간격동안의 무공 전수를 비교적 부드럽게 설명하기 위하여 제시된 주장이며 양과에 대한 향수와 양과가 가진 뛰어난 자질도 이 추측에 한 몫을 하였다. 실제로 김용소설 전체를 봐도 소오강호를 제외하고는 독고구패와 접점이 있는 인물은 오로지 양과밖에 없기 때문에 양과를 독고구패와 연관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볼 수는 없다.[* 독자에 따라서는 양과와 영호충이 각기 익힌 독고구패의 검법의 비교우위를 논하기 위해서 양과가 독고구검을 창시했고 그것을 영호충이 익혔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팬픽이라는 독자 개인의 상상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리가 있다. 또한 이것은 소오강호의 내용을 본다면 간단하게 부정되는 추측으로, 이미 소오강호에서는 '''독고구패가 독고구검을 창안했다'''라고 명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 간의 연계를 상당히 중시하는 김용의 성격상 양과에 의해서 창시가 되었다면 직접적인 언급이 없더라도 소설을 읽는 독자들 대다수가 양과에 의해서 독고구검이 창시되었다는 것을 무리없이 연상할만한 언급을 반드시 해두었을 것이다. 소오강호에서 훨씬 이전 인물인 독고구패는 계속 언급되지만 양과는 단한번의 언급도 없는 것에서 양과창시설이 그리 신빙성 있는 추측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단적인 예로 김용은 인터뷰에서 양과와 영호충의 검법 수준에 대해서 양과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그 이유를 양과와 영호충의 수련기간과 깊이로 규정하였다. 만약 양과가 독고구검을 직접 창안하거나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서 후대에 전했다고 설정했다면 이것을 반드시 언급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소봉과 곽정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항룡십팔장의 전수를 정확하게 언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