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자기 (문단 편집) == 한국의 도자기 == [[한국]]의 전통 도자기에는 대표적으로 선사시대의 [[토기]], [[신라토기]], [[가야토기]], [[고려청자]],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 등이 있다.[* 그외에 마이너하게는 [[고려백자]], [[조선청자]], [[옹기]]등도 포함돼 있다.] [[통일신라]] 이전까지 한국의 도자기 기술은 조악한 수준으로 삼국은 [[토기]]를 생산했고[* 다만 삼국시대의 토기는 학교 역사시간에 맨 처음 배우고 흔히 떠올리는 선사시대의 토기보다는 훨씬 진보한 형태다. 자세한 사항은 [[토기]] 문서로.] 귀족층은 [[정창원 신라 유기그릇]], [[정창원 신라 숟가락]] 같은 [[유기(금속)|유기]]를 사용하거나, 혹은 중국의 도자기를 수입해서 사용했다. 통일신라 중기부터 중국이 755년 [[안사의 난]]을 시작으로 혼란기가 계속되면서 중국의 도공들이 한국으로 망명해 도자기 기술이 전래되었고, 한편 중국에서 도자기 수입이 계속되면서 자체생산 수요가 생겨나 청자의 초기 형태인 해무리굽청자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당삼채]]의 영향을 받아 신라삼채나 발해삼채도 일부 만들어졌는데 그 수는 적다.] [[백자]]와 흑유자도 소량이지만 이 시기에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제작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고려시대 중기에는 중국 청자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을만큼의 완성도에 다다르게 되었다. 10~11세기에서는 송으로부터 다양한 제조기법이 소개되었고, 고려 도공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독특한 고려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청자와 백자는 높은 온도를 만드는 기술이 아주 중요하다. 일단 기술적인 측면에서 청자는 필연적으로 백자로 발전한다. 기술적인 면에서 백자는 청자의 발전형이다. 가끔 이걸 모르고 조선은 백자밖에 못 만드는 데 고려는 청자 만드니까 조선 자기기술은 퇴보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조선백자의 예술은 고려청자에 뒤지지 않는다. 백자를 만드는 백토가 청자의 원료인 태토보다 입자가 훨씬 고운 데다가 불순물이 섞이면 작품이 안 나온다. 색이야 청자가 더 화려하지만, 자기는 색이 전부가 아니다. 다만 사회의 중심 이념이 [[청빈]]을 강조하면서 [[사치]]를 멀리하는 쪽으로 변화하다 보니 청자에 비해 화려함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백자는 재료부터 제약이 있다. 백자는 질 좋은 고령토로 만들어야 한다. '고령'이라는 명칭은 중국에 있는 도자기의 총본산 경덕진의 고령산(高嶺山)에서 유래했다. 청자는 [[불순물]] 약간을 포함하는데, 백자를 만들려면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온도 면에서도 청자는 [[철(원소)|철]]의 [[제련]]온도인 1100 ℃ 이상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면 만들 수 있다. 2011년에 재현된 고려청자는 2000 ℃나 되는 '''[[플라즈마]] 상태'''까지 갔지만([[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alee1212&logNo=50087534288&parentCategoryNo=36&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고려시대에 이 정도 온도까지 올리고 유지하는 기술이 있었을 리가 없다. 과거와 다른방식으로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특이한 사례일 것이다. 백자는 최고 1400 ℃ 이상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청자도 온도에 따라 구현되는 색이 다르긴 하지만 백자만큼은 아니다. 도자기는 구현하기 어려운 색이 제법 된다. [[경매]]로 올라서 최고가를 경신한 조선백자는 그 가치가 표면에 그려진 붉은 꽃에 있었다고 한다. 붉은 색은 진사라고 부르는 [[구리(원소)|산화동]]으로 그려내는데 높은 온도에서 변색되지 않고 그런 붉은색을 나오도록 굽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자칫하면 담황색, 암록색, 암흑색으로 나온다. [*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한 번 구워낸 자기에 낮은 온도에서 붉은색이 나오는 안료를 칠해 저온으로 한 번 더 구워내는 두채기법을 개발함로써 기술적인 난제를 극복했다.] 조선 말기의 도자기들은 침체되기 시작했는데, 임진왜란 때 많은 장인들이 일본에 잡혀가 도제식으로 전수되던 제작기술의 맥이 끊긴 데다가, [[임진왜란]]과 연이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국토가 피폐되어[* 토지대장에 등록된 농지가 3할로 격감한 것이 유명하다. 이후로도 은결(등록누락된 농지들. 여기 소득은 다 탈세된다)은 조선말기 내내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경제가 침체된데다, 호란 2번에 '''[[경신대기근]]'''까지 왔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조정에서 비싼 [[청화백자]] 대신 [[철화백자]]를 쓸 정도였다.[* 청화백자의 염료인 코발트는 아프간(!)산으로 엄청나게 비싼 반면, 철화백자는 그나마 조선에서 자급 가능했기에 상대적으로 쌌다.] 도자기가 침체되면서 양반들의 취향이 금빛으로 번쩍이는데다 튼튼하기까지 한 [[유기(금속)|놋그릇]]으로 옮겨가면서 도자기 수요까지 줄자 도자기 산업은 더 침체되었다. 이런 흥망성쇠의 역사 때문인지 한국 도자기는 해외 경매에서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심지어 열화품인 철화 백자도 수십억을 오가기도 하며 전란으로 인해 탄생한 급조품인 [[달항아리]]도 수십억 대다. 이는 장식과 그림이 너무 많아 중국 도자기의 아류작 취급을 받는 대다수 도자기와 달리 희귀할 뿐더러 성리학적 철학과 예술성을 지닌 도자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자기 문화를 일본인들은 신기하게 보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도자기가 일상생활 속에 깊이 관여해있기 때문이라고[* 일본도 도자기를 통한 생활용품을 만들긴 했으나 서민들은 주로 나무였고, 조선은 그릇, 술병, 요강, 항아리, 붓통 등 서민의 삶속에 깊이 녹아있었다.] 그래서 생활용품으로 자주 수출되었다. 도자기와 관련된 유명한 [[클리셰]]로 일반인의 눈엔 멀쩡해 보이는 도자기라도 장인이 마음에 안 들면 거침없이 깨트리는 것이 있다.[* 소설 및 이를 희곡화한 '[[독 짓는 늙은이]]'가 대표적. '''뚜왕 뚜왕'''하면서 9평 때 멘붕을 선사한 그거 맞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지간히 네임밸류가 높은 장인이 아니면, 지인들이 아까우니까 달라고 하면 준다고도 하고, 전통식 가마에서 만드는 것이라도 작은 흠이 있는 것을 모아서 몇천원 정도에 싸게 팔기도 한다. 옛날에도 마찬가지라 발굴되어 나오는 옛날 도자기들도 기형이 뒤틀리고 터져나간 것이 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사용한 흔적까지 남은 경우도 있다. 장인정신이니 뭐니 하면서 거침없이 깨버리기는 역사시대에는 거의 없었고 오늘날에야 가능해진 것이다. 청화백자에 사용하는 코발트 안료는 정말 질 좋은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을 통해 들여와서 더럽게 비쌌다. 게다가 관요에서 납품할 때도 [[뇌물]]로 그 갑절을 찔러줘야 했다는 기록도 있어 도공들이 가마에서 안 터지고 나온 자기들을 마구 깨버릴 여유가 없었다. 가마에 그릇을 구우면 일정 분량 불량품이 나온다. 그런 건 싸게 팔거나 정상 제품 팔 때 덤으로 주면 되므로 깨 버릴 이유가 없다. 깨 버린 도자기는 바닥에 깔거나 하는 용도 외에는 다시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만드는 것도 시간과 재료가 들어가지만 굽는 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어가는, 따지고 보면 원가가 비싼 그릇이다. 현대의 도공, 도예가들도 그릇이 망가지면 때우고 고쳐 가면서 쓴다. 한중일 도자기 사이에는 웃지 못할 관계가 있는데, 일본이 [[임진왜란]]부터(심지어 [[도공]]들도 납치해갔다)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의 도자기를 쓸어간 후, 중국에서 ~~미쳐 날뛰는~~ 도굴꾼과 밀수꾼들이 세탁을 위해 한국으로 자기네 도자기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도굴 등의 문화재 장물 매매는 심하면 '''[[사형]]'''까지 떨어질 수 있는 중범죄로 친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 전멸한''' 송나라 시대의 여요부터 [[장제스]]가 [[대만]]으로 탈출하면서 바리바리 싸들고 가던 도자기, 피난박스라 불리는 물건들까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세탁 보낸 도자기가 도리어 한국에서 사회 혼란기를 거치면서 전국으로 흩어져 집 구석이나 골동품점에 유통되었다. 최근 중국은 중국의 신흥 부자들이 경매에서 이런 유출 도자기를 사들이기 시작하자 문화재 회수를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중국으로 역수출(?)되어 경매에 붙여지면 어쩔 때는 수십억 원까지 불리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몇몇 장인들의 작은 공방들의 자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에서 만든 공장제 도자기가 유통된다. 오늘날 한국 도자기 산업은 업계 1위 '한국도자기'를 중심으로, '한국도자기'의 형제기업인 'ZEN', 목포에 공장을 둔 '행남자기', 이천에 공장을 둔 '광주요', 여주에 공장을 둔 'yido' 등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끌지만, 최근에는 외국 기업의 도자기들에게 경쟁력에서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공]]이나 잡티가 없는 꿀피부를 도자기 피부라고도 한다. 그런데 [[화장]]을 너무 심하게 해서 사람 피부 같지 않다는 의미로 '도자기 인형 같다.'는 말도 하니까 오해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충치 치료 시 [[금]] 대신 충전재로도 사용된다. 금과 달리 색상이 기존 치아와 같아서 미관상 좋고 경도도 좋다. 다만 강도가 떨어져 깨질 수 있으므로 어금니에는 잘 쓰지 않는다. 만든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억소리 나는 값으로 불리는 도자기도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458519|#]]) 이게 몇백 년이 지나도록 유지된다면 후덜덜한 가격이 될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