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시샤대학 (문단 편집) == 여담 == * 창립자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대학의 이념(자유주의, 국제주의, 기독교 교리를 통한 '국가의 양심' 육성)을 부지런히 실천한다. 특히 [[유학]]에 적극적이며 한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외국인 학생에게도 대우를 잘해주는 편이다. || [[파일:external/www.ttearth.com/doshisha_university_001.jpg|width=100%]]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eong_Ji-yong_stele.jpg|width=100%]] || || {{{#EEEEEE '''윤동주, 정지용 시인의 시비''' }}} || *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교내에는 동문인 [[윤동주]]와 [[정지용]]을 기리기 위한 시비가 설치되어 있다. 두 사람 모두 도시샤대학을 다녔다.[* 정지용은 문학부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지만 윤동주는 졸업하기 전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다. 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결국 석방되지 못한 채 의문사하고 말았다. 참고로 윤동주는 여러 학교를 나왔다.] 방송 등을 통해 알려져서인지 매년 1만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이 시비를 찾는다고 한다. 대학 주최는 아니지만 한국인 동창회 및 재일본한국문학회의 협력으로 시인의 기일(2월 16일)마다 해당 장소에서 헌화식 및 교류회 등을 연다. * 의학부 설립에 관한 떡밥이 오래전부터 주기적으로 떠도는 듯 하다. 이는 창립자의 뜻이기도 하거니와[* 과거에 간호학교와 병원을 설치한 적이 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폐지되었다. 다만, 현재 [[도시샤여자대학]]에 약학부와 간호학부가 있다.], 의학부 설치로써 올라가는 대학의 위상 및 대외 평가 지수와, 부속병원의 짭짤한 수입이 어마어마하기 때문. 2000년대 들어서 '생명의과학부'를 설치거나 의료계와 연계 강화 등으로 힘을 넣는 듯 하나… 여러 문제 (의학계의 반발, 정부의 미인가 등)로 인해 당분간은 가능성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의학부를 설치운영하는 대학 또는 의학 단과대학을 인수합병 하는 식의 가능성은 없지는 않아보인다. [[와세다대학]]이 같은 목표로 인근의 재정난이 있는 의학부 설치 대학 또는 단설 의대 합병을 노린다는 소문과 닮은 점이 있어보인다. 자세하게는 구글 등에 검색해보거나, [[https://www.doshisha.ac.jp/information/overview/president/question/answer18.html|도시샤대학 홈페이지 - '학장과의 대화'에 있는 관련 내용]]을 참고해보자. * 유학생 중 한국인 학부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이다. 거의 모든 일본대학의 유학생은 중국인이 주류지만[* [[와세다대학]], [[메이지대학]], [[리츠메이칸대학]] 등 다른 유명 사립대학들은 중국인 유학생 비율이 더 높다.] 도시샤대학만큼은 중국인보다 한국인 유학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 긴 역사를 가진 학교인 만큼 예로부터 와세다대학, 게이오대학과 함께 3대 사립 대학(日本三大私学)으로 불리고 있다. 단, 이 명칭은 역사적인 면에서 일본 사립 대학 3곳을 묶어 부르는 명칭이다. 편차치(인풋)이나 명성(아웃풋)으로 일본 3대 사립 대학을 꼽자면 와세다, 게이오, 죠치가 한데 묶이는 경우가 많다.[* 명문대가 수도 지방 가리지 않고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는 일본이라지만, 극복하기 쉽지 않은 필연적인 지역적 한계가 있겠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즉, 전통적인 관점에서 일본 3대 사립 대학과, 브랜드력 관점에서 일본 3대 사립 대학에는 약간 다름이 있다는 말이다. 구글이나 야후 재팬에 日本三大私学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자료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문서를 정독하면 대강 알 수 있겠지만, 꽤 친한(親韓)적이며, 한국 근현대사나 한일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문학, 신학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드세게 나타난다.] 극초기인 도시샤영학교 시절부터 이미 한국인 유학생[* 윤치호 등.]이 있었으며, 본학 창립자인 니지마 조는 [[이수정]] 목사 (1842년 ~ 1886년?) 등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한국인 학자, 문인, 목사, 정치인, 기업인 등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 이러하는 흐름은 해방 후에도 끊임 없이 이어져 왔으며; 현재의 이마데가와 캠퍼스 중심부에 위치하는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들, 유수의 한국 대학들과의 교류・협정 관계, 한일관계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본학의 '코리아 연구 센터'(同志社コリア研究センター), 일본의 주요 대학들 가운데 드물게 중국인보다 인원이 조금 더 많은 한국인 유학생의 수와 이들에 대하는 대학의 우수한 지원 등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단, 이와 대조적으로, '출신인물' 단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나 [[혐한]]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기는 한다. * [[중국어]]로 同志는 [[게이]], 社는 [[클럽|모임]]이라는 의미이므로 동지사 = '''게이부'''(…)와 같은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중국인]] 유학생이 적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단순히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게, [[중국인]]들의 글자 발음에 대한 집착은 상상이상이다. 예를들어 중국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을 돈을 내고 사는 시스템이고 휴대전화 번호 또한 돈을 내고 구입하는데 8(발전, 발복, 발재를 의미)이라든지 6(순조로움을 의미)이 많이 들어간 번호를 매우 선호한다. 예를 들어 8888 같은 번호판은 지역에 따라서 한국돈으로 수억원 대를 호가한다. 전일본공수의 젠닛쿠가 하루종일 텅텅 비었다(손님이 없다)는 의미라 중국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맥락.] 본디 1980년대까지는 중국에서 [[동지]]라는 말이 경칭으로 흔하게 쓰였기때문에 이때는 웃음거리가 아니었지만, 이후로 동지가 구세대들이나 쓰는 말이 되고 젊은층 사이에서 동성애자들이 서로를 부르는 은어가 되면서 의미가 달라지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된것이다. * 설립자 니지마 조의 아내인 니지마 야에의 일생을 상세하게 다룬 대하 드라마 [[야에의 벚꽃]](八重の桜)[* [[아야세 하루카]]가 니지마 야에역을 [[오다기리 죠]]가 니지마 죠 역할을 맡았다.]이나 만복(まんぷく)[* 도시샤대학 자체가 무대라기보단 1930-40년대 당시 오사카를 재현하는 배경으로 나온다.] 등의 드라마에서 배경지로 쓰였으며 애니메이션 [[number24]]의 배경지로 쓰이기도 하였다.[* 작중 堂紫社大学라는 이름으로 나오지만 대놓고 라넷기념 도서관 등이 나온다. 단, 작품의 인지도 자체는 낮은 편.] *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유명 소설 시리즈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에 나오는 사립 에이토대학과 EMC는 각각 도시샤대학과 추리소설동호회(現 미스테리 연구회)가 모델이다. * 한국인유학생회 외에, 재학생들의 보호자가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학교 공인인지는 확실치 않으니 확인 필요. * 개신교계 미션스쿨이라서 그런지 [[성탄절]]이 교내 휴일이다. [[분류:1875년 개교]][[분류:일본의 대학]][[분류:교토부의 대학]][[분류:일본의 개신교]][[분류:개신교계 대학]][[분류:일본의 구제교육기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