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서관 (문단 편집) ==== 한국 ====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 > ----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中 고려시대에는 [[보제사]] 부속건물인 2층의 장경전에는 당대 1만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는데 당대 지식인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지혜가 보제사에 모여있다.'라고 한 기록도 보이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기록문헌의 취급을 중요하게 여겼으나 [[전쟁]]이나 기타 이유로 과거 문헌의 상당량이 소실되었다.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재 위서 논란이 큰 [[화랑세기]]를 제외하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타국에 비해 비교적 최근인 [[12세기]]의 [[삼국사기]]라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우리나라에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도서관으로,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을 현대에도 보관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도서관기관은 [[규장각]]으로 그중 [[창덕궁 규장각]]이 대표적이며 비원의 [[주합루]] 또한 규장각 청사 중 하나다. 또한 앞선 역사적 사례들을 참고하여 문헌 자료를 남기는 데 열성을 기울인 [[조선]]은 비교적 문화유산을 잘 보존한 편이다. 단적인 예로 [[조선왕조실록]]은 전국 다섯곳에 나누어서 보관함으로서 한곳의 보관소가 소실되어도 다른 곳의 살아남은 보관소에서 이를 벌충할 수 있게 하는, 요즘으로 치면 백업을 충실히 해두었다. 그러고도 전국토가 불바다가 된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전주에 있던 사본이 살아남아 전후 전주본을 통해 다시 복원하여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고도 [[19세기]] 들어서 [[병인양요]]로 [[외규장각]]의 귀한 왕실 도서 및 기록 자료들이 불타버리는 참사가 발생하였지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의 [[세계기록유산/아시아#대한민국|기록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할 지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