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사 (문단 편집) === 土佐国 === [include(틀:일본의 옛 지명)] 일본의 옛 지명. [[고키시치도]] 중 난카이도(南海道, 녹색 부분)에 속하며 지금의 [[고치현]]으로 별칭은 토슈(土州)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4px-%E5%9C%B0%E5%9B%B3_%E4%BB%A4%E5%88%B6%E5%9B%BD_%E5%9C%9F%E4%BD%90%E5%9B%BD.svg.png]] [[고대]], [[중세]] 시절에는 어마어마하게 깡촌 취급을 받던 영지다. 원래 도사가 속해 있는 시고쿠 자체가 매우 따뜻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적고 산지의 비중이 매우 높아 별로 가치 없는 지역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도사는 중앙에 고치 평야가 자리잡고 있고 바다에 접해 있지만 상대적으로 바다에 진출하기 용이한 곳이 많지 않고 주변이 높은 산지와 바다로 포위 당한 형국의 일종의 고립된 지형이었으며 위치와 주변 지형의 제약으로 인해 물류와 인력의 교류 및 이동이 어려웠다. 게다가 쌀농사에 필요한 물과 식수 또한 구하기 어려워 인구 또한 많지 않았다. 후세 역사가들은 중세 영주들의 세력 확장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중의 하나로 여긴다. 현재도 고치 출신이면 깡촌 출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원도만 해도 고대시대부터 21세기까지 쭈욱 깡촌 취급을 받은 때가 많았는데, 시코쿠는 인구 밀집지대인 오사카 일대와는 아예 바다로 갈라져 있다! 큐슈는 대륙과의 소통구이기라도 했지 시코쿠는 이도 저도 아니다. 중세 귀족계층이던 [[고셋케]]의 [[이치조]][* 가마쿠라 시대에 후지와라 씨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으로, [[메이지 덴노]]의 황후인 [[쇼켄 황후]]가 이치조 집안 사람이다.] 가문의 장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이 유배가는 땅, [[요괴]]가 나오는 공포스러운 땅 취급을 받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오닌의 난|중세의 혼란함]]에 지친 이치조 노리후사(一条教房)[* 센고쿠 다이묘 도사 이치조 씨의 시조이다.]가 가문의 장원이 있는 도사로 향하려 했을 때 그의 친척들과 동료들이 하향을 극구 말리던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 중세에는 여러 호족들이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다 [[쵸소카베 쿠니치카]], [[쵸소카베 모토치카|모토치카]] 부자에 의해 평정되었다. 쵸소카베 가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으로 참가해했다가 패해서 개역당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선 [[야마우치 카즈토요]]가 들어와 도사 번의 새로운 번주가 되었다. 그 후 야마우치의 가신은 상급무사, 기존의 쵸소카베 가의 신하들은 향사(鄕士)라고 불리우는 하급무사로 전락해서, [[막말|에도막부 말기]]까지 두 계급사이에는 신분적 차별이 심했다. [[막말]]에는 [[사카모토 료마]][* 원래 도사 출신이었으나 막부 타도를 위해 탈번했다.]의 타도 막부 정신과 [[다케치 즈이잔]]의 [[존황양이]] 정신의 영향으로 인해 대표적인 도바쿠하(討幕派)[* 토막파=막부 타도론자. 반대로 막부 옹호 및 지지자들을 '''사바쿠하'''('''佐幕派''')라고 불렀다.]로 떠올랐다. 메이지 유신의 4대 번[* 사쓰마, 조슈, 사가, 도사.] 중 하나이며, [[사쓰마]]와 [[조슈 번]]에 밀려 존재감이 떨어지는 번. 다만 도사 번주 야마우치 요도는 막부 말기의 4현후로 꼽히며, 고토 쇼지로를 통해 전해받은 사카모토 료마의 이른바 '선중팔책'을 이타쿠라 가쓰키요를 통해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올린 사람이 이 사람이다. 인구, 군사력 같은 수치적인 '국력'에서는 사쓰마나 조슈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상술했듯 도사번 출신 정치가들의 활약으로 인해 토막혁명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신정부에선 딱히 혜택을 못봤다. 이렇게 공을 세우고도 다시 소외당한 경험 때문인지 메이저 유신지사였으며, 토막혁명 후 자유민권운동의 지도자가 된 [[이타가키 다이스케]], 일본 군부의 폭주를 막으려다 암살당한 [[하마구치 오사치]],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고토쿠 슈스이]]를 비롯한 메이지 시대 재야 정치운동가, 사민평등주의자 등 근대 일본의 '운동권' 인물들을 배출한 지방이기도 하다. [[가다랑어|가쓰오 타다기]]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도사 번은 고치 성을 본거지로 삼았기 때문에 고치 번으로도 불린다. 판적봉환 당시 고치 번으로 명명되었다. [[도사견]]의 '도사'가 이 지역을 뜻한다. 현재는 [[도사시]], [[도사군]], [[도사초|도사정]]으로만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