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미티아누스 (문단 편집) === 즉위 전의 삶 ===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플라비아 도미틸라의 둘째 아들로 51년 10월 24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기사계급]] 출신이었으며, 위로는 11살이나 연상인 친형 [[티투스]], 여자 형제인 [[소 도미틸라]]가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가 승진을 거듭해 로마 주류 사회에 편입된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과는 성장 과정부터 많이 달랐다. 티투스가 소년 시절까지 은수저조차 없는 가난한 평민 가정에서 자랐다면, 아버지가 집정관에 취임하기 한 달 전 태어난 도미티아누스는 로마 상류층 자제로서 갖춰야 하는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도미티아누스는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의 서민적 풍모, 형 티투스의 다정다감한 성격과 달리 소년 시절부터 귀족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었고,[*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자신이 잘생겼다는 것을 대놓고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들며 뱃살이 나오고 탈모까지 오자 가발을 썼다고 한다. 외모 집착과 대머리 콤플렉스가 심해서 직접 <모발 관리에 대하여>라는 책까지 집필했다.] 황제 즉위 전까지 형과 달리 군복무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도미티아누스는 네로 사후 벌어진 내전 당시 로마에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비텔리우스 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큰아버지 사비누스와 함께 유피테르 신전 안으로 도망쳐 밤새 관리인 숙소에 숨어 있다가 변장을 하고 탈출해야만 했다. 이후에도 추격을 받다가 어머니의 친구 도움으로 여러 번 목숨을 구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내전 승리 후 황제가 되자 로마를 관할하는 수도 법무관에 올랐다. 이때 도미티아누스는 명장 [[코르불로]]의 딸이자 아일리우스 라미아의 아내였던 [[도미티아 롱기나]][* 3대 황제 가이우스 칼리굴라의 아내 밀로니아 카이소니아의 조카이기도 하다.]를 남편과 이혼시키고 결혼했다. 도미티아누스는 베스파시아누스 생전에 이미 '프린켑스 유벤투티스'의 지위를 가지면서, 아들이 없던 형 티투스의 후계자로 선언된 상태였기 때문에 언제라도 황제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또한 베스파시아누스 생전에 이미 6차례나 집정관을 지내는 등 제왕 교육을 받아서, 형 티투스가 황제가 된 뒤에 아버지 생전 형이 누렸던 호민관 특권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티투스가 예전부터 동생에게 집정관을 양보하는 등 배려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기에 가능한 요구였다. 그러나 티투스는 동생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도미티아누스는 티투스를 적대해 제위에 오른 뒤 티투스의 신격화 허용 외에는 어떤 영예도 수여해주지 않았다. 아울러 원로원에서 연설할 때도 모호한 표현으로 티투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 형의 요절 당시 죽음의 배후일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