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미티아누스 (문단 편집) == 성격 == 도미티아누스는 책임감이 강하고, 일반 민중이나 속주민들에게는 자애롭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교성이 지나치게 부족했고, 사색적이었으며 의심이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아버지, 형과 달리 사람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있게 새롭게 지은 [[팔라티노 황궁]]에 투명한 흰 대리석 주랑들을 만들어 일렬로 세우도록 했다. 또한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를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천거하는 도움을 주어 베스파시아누스가 정실부인 사후 평생 사실상 부인으로 대우한 해방노예 출신 여성 안토니아 카이니스에 대해 절대 새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고 해방노예로 냉정하게 대우할 정도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러나 여러 부분에서 티베리우스와 비슷해보여도 많이 달랐다. 티베리우스는 혼자놀기를 좋아했어도 어린시절부터 로마, 그리스 문학을 좋아했고 자신이 좋아한 그리스 문학가의 필체로 시나 문학을 짓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는 네르바 황제의 할아버지 네르바로 대표되는 소수의 [[부랄친구]]나 일부 가족들[* 젊은 시절에는 연애결혼으로 맞이한 첫 아내 빕사니아 아그리피나, 친동생 대 드루수스 부부, 양아버지 아우구스투스와 쉬는 날 대부분을 보냈고 나이를 먹은 후에는 조카와 아들 내외 정도였다고 한다.]과는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진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이 외에도 그는 공무 외의 시간에 점성술 책을 읽고 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취미도 있었으며, 어릴 적부터 [[검투사]] 경기, 전차 경주, 서커스, 무언극과 같은 유흥문화에는 큰 흥미도 없어[* 어느 정도로 흥미가 없었는지, 아우구스투스의 지시로 참석해도 잠시 얼굴만 비추고 퇴장했다. 이는 소년 시절부터 일관된 모습이었는데 본인 이름이나 가문으로 주최한 검투사 경기, 전차 경기, 무언극 등에 얼굴도 비추지 않고, 그 근처도 방문하지 않아 로마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로마인들에게 "재미없고 과묵하다", "애늙은이", "삶의 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 "베스타 여사제 같다" 등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도미티아누스는 티베리우스처럼 태생적으로 과묵하고 수줍음이 많은 폐쇄적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취미가 딱히 없었다. 그는 애당초 여자애인을 거느리지 않고, 유흥문화라면 질색하면서 혼자 사색하고 가족이나 소수의 친구, 점성술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티베리우스와 달리 사치스럽고 콜로세움, [[키르쿠스 막시무스]] 등으로 자주 놀러가 유흥문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티베리우스는 자기 우상화에 관심도 없었고, 원로원이 이를 먼저 제안했어도 늘 완강하게 거부했다. 또 그는 가계 전체가 파트리키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박함과 투박함을 선호한 데다, 여자문제나 사생활에서도 정적들이 공격할 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당대, 후대 로마인들이 지적했듯 너무 깨끗해서 재미없는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고 하면 '''평생 순결을 맹세한 베스타 여사제 수준'''이라고 반놀림을 당할 정도였다. 그래서 현대 학자들은 티베리우스를 공적, 사적으로 너무 엄격한 [[청교도]]적인 로마 황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티베리우스는 태생적으로 로마귀족답지 않게, 로마서민들이나 입는 평범한 재질의 투니카, 토가 등을 입고, 음식 역시 시골밥상 등을 즐겨 먹었다. 그래서 정적과 로마 풍자시인, 서민들은 이런 티베리우스를 인색하고 본인에게도 짠돌이라고 비이냥 거리면서도 그 엄격함과 언행일치된 모습에 놀라워했다. 반면 도미티아누스는 티베리우스와 달리 어린시절부터 매우 귀족적이고 화려함을 선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나이가 먹을수록 더 귀족적이고 화려해졌다. 입은 옷은 늘 최고급 재질로 만들어진 것들이며, 호화로운 음식과 이국적인 향신료 등은 도미티아누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는 본래 기사계급 출신으로 평민들과 여러 부분에서 취향이 비슷한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와 상반된 모습이었고, 밤늦게까지 술파티를 즐김에도 정도는 지킨 형 티투스와도 비교됐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티베리우스와 달리 자기애가 강렬했던 칼리굴라 이상으로 자기를 높이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미티아누스는 칼리굴라나 아버지, 형과 달리 유머 감각이 매우 없었고 유머에 큰 관심도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다는 부분에서도 얼핏보면 두 사람은 비슷해보이지만 여기에서도 둘의 차이가 분명했다. 티베리우스는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 모두 엄격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티베리우스는 젊을 적부터 리더십과 자기희생 정신이 대단해, 군사행동 중 위기에 처한 부하들을 위해 앞장서거나, 제 능력에서 최선을 다한 부하를 챙기는 인품을 갖추었다. 또 능력에 따라 부하를 차별하기보다는, 그 부하가 능력이 부족해도 성실하면 그를 높이 평했다. 반면 도미티아누스는 기본적으로 엄격한 성격이었고, [[내로남불|자신과 타인을 구분해 엄격함의 잣대를 들이대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귀족적인 만큼이나 부하를 다룰 때 명령 복종을 중요시했고, 자신이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자비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티베리우스는 차가운 짠돌이, 잔정도 없는 구두쇠로 로마민중과 원로원에게 비난받았음에도 비이냥 속에는 존경이 있었고, 도미티아누스는 민중들과 일반군인들에게는 인기가 있었어도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로마 엘리트 지식인들에게는 더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도미티아누스는 경호대를 대동해 저녁식사 후 산책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취미도 없었고, 취미라고 해도 자신의 책무에 더 몰두하거나 첩들의 털을 뽑는 가학적 취미 등으로 더 유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도미티아누스는 정적이나 원로원에게는 사치가 심하고, 잔인하고 변태같은 인간으로 치부됐다. 반면 적어도 로마 내에서 중립적이라는 이들에게서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임에도 퇴폐적이나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그는 당대부터 성격과 관련된 평이 분명하게 갈렸다. 이는 플라비우스 가문이 제위를 차지하기 전부터 나온 친 플라비우스 왕조, 반 플라비우스 왕조, 반 도미티아누스 세력, 친 도미티아누스 세력 모두의 평이라서, 주목할 만 하다. 동시대 모든 로마인들의 일관된 이야기를 살펴보면, 도미티아누스는 능글맞으면서도 냉혹하고 때론 비열한 면이 많았던 아버지, 형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하고 냉혹하고 무자비함에도 소심했다고 한다. 따라서 아버지, 형과 달리 키가 매우 크고 타고난 미남임에도 이상하리만큼 이중적이고 타고난 카리스마가 부족해보였다. 그는 제위에 오른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의심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명령을 내리고 스스로 고립된 채 본인을 과보호하는 경향도 강했다. 도미티아누스는 평생동안 본인만 알아듣는 이상한 유머를 한다거나,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하면서 상대를 시험하고 이를 통해 그 사람의 향후 행동을 예측하는 이상한 버릇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는 도미티아누스를 좋아하는 이들도 비슷하게 말한 부분인데, 여러 학자들은 도미티아누스가 이런 성향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청소년기였던 10대 후반 무렵에 겪은 성장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도미티아누스는 [[네로]] 치세기부터 네 황제의 해 내내 본인 목숨도 장담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고,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고립된 채 자라야만 했다. 이는 [[칼리굴라]]의 10대 성장기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이다. 그는 네로 치세기 당시에 아버지가 극장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추방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홀로 성장하고 네로 측근들의 감시를 받았다. 이어 어머니가 병으로 죽었고, 부친과 형은 늘 밖으로 나가 있었으며, 그를 돌봐준 백부 사비누스와 그 일가는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치하에서 전쟁으로 죽거나, 황제 명령으로 살해됐다. 이는 도미티아누스도 비슷했는데, 그 역시 비텔리우스 부하들 손에 거의 죽을 뻔 했고 만일 여장을 하고 탈출하는데 실패했거나 어머니의 친구들이 그를 숨겨주지 않았다면 69년 내전 당시 거의 죽을 뻔 했다. 즉, 도미티아누스가 티베리우스, 칼리굴라를 섞어 놓은 듯한 변덕스럽고 냉혹하면서도 의심병이 심한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과시적이면서도 소심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이런 성장 배경이 큰 몫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대기록상의 여러 의견 등을 종합해,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바라본 역사가 브라이언 존스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진짜 성격을 평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복잡하다고 평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