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미니코회 (문단 편집) == 개요 == >'''관상하라, 그리고 관상의 열매를 전하라(contemplari et contemplata aliis tradere).''' [[도미니코|성 도미니코 데 구스만]]이 오스마의 [[주교]] 디에고와 함께 [[프랑스]] [[툴루즈]]에서 조직한 [[수도회]][* 1216년 이전엔 아직 수도회가 아니라 단순히 툴루즈 교구 소속의 단체였고 1206년엔 이미 수녀회(옛 용어로 제 2회)의 전신이 되는 공동체가 있었다.]를 기반으로, 1216년에 [[교황]]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수도회]]로, 일명 '''설교자회'''라고도 한다.[* 사실 [[라틴어]] 원문은 직역하면 '설교하는 형제들의 회' 정도 되고, 실제로 한국 도미니코회에 소장한 회칙에는 '설교자회'가 공식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관습을 고려해서 "'도미니코회'라고도 부를 수 있다." 하고 허락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앙의 진리를 만인에게 설교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도회이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본질적인 수도생활 요소는 초대 교회 사도들의 생활을 모범으로 삼으면서 관상생활과 연구생활, 공동체 생활 및 복음삼덕(청빈, 정결, '''순명'''), 그리고 규칙 준수[* 전통적으로 도미니코회는 순명 서원만을 발한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 서원을 할 때도 청빈과 정결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복음삼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칙 안에 청빈과 정결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회칙에 의거하여 '하느님께 순명 서원을 발하면 나머지 두 덕목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와 사도직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다. 때문에 매우 학구적인 분위기를 가지며, 사실상 [[예수회]]와 함께 [[가톨릭]]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성 [[도미니코]]가 이 [[수도회]]를 설립한 계기 자체가 [[이단]]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함이니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남프랑스의 이단 종파 [[알비파]]와의 대립에서 선봉장을 맡아 활약한 것. 그러나 도미니코회는 사도적 청빈, 깊이 있는 설교, [[성모 마리아]] 신심(대표적으로 [[묵주기도]])으로 사람들을 정통 [[가톨릭]]으로 귀의시키려 노력했고, 당시 [[프랑스]] 왕권의 남프랑스 진출 패권에 편승해서 시행되었던 [[알비파]]에 대한 폭력과 무력탄압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성 도미니코와 알비 십자군의 지휘관이었던 몽포르의 시몬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음은 사실이고, 이 때문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어느 정도 생겼다는 게 정설이다. [[파일:external/www.sistersop.com/HomeBox_prayer-600x400.jpg]] 이러한 특징 때문에 [[중세]]에는 [[십자군]]에게 격려 설교를 하기도 하였으며, [[이단심문관]]은 대부분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맡았으며[* 다만 설립자인 [[도미니코]] 본인은 어디까지나 설교 권한을 받았지, 종교재판관과 [[이단심문관]]이었던 적은 없다. 종교재판과 이단심문관 제도가 갖춰진 것(1231)은 그가 선종(1221)한 후의 일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이단심문관 일은 당시 수사들 사이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직종이었다. 거의 대부분 수사들이 '해야 하니까 한다.'는 마인드였고, 지속적으로 수도회 총회에 불만을 표시했다. 나중에는 수도회 총장이 편지로 '합법적으로 (이단심문관 일에서) 빠질 수 있으면 빠지세요.'라고 할 정도였다.], 교회 내의 저서를 검열하는 일도 맡았다. 이 때문에 별명은 '주님의 개(Domini canis)'[* 스펠링을 보면 알겠지만, Dominicani'(도미니코회원)의 언어유희이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뭔가 악역 같은 포스(?)가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중세의 서방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자연철학을 발전시켜 더 나아가 과학혁명의 계기를 제공한 성 대(大) 알베르토, [[스콜라 철학]]의 끝판왕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 등 무수한 성인들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신학/가톨릭|가톨릭 신학]]계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세 독일 신비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에 속하는 마이스터 엑카르트(1260~1328), 요한네스 타울러(1300~1361), 하인리히 소이세(1295~1366)가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다. 또한 가톨릭의 [[중국]] 선교 초창기 때, 중국 의례 문제를 두고 [[예수회]]와 대립했다. 예수회는 상류층 및 사대부 위주로 선교했기에 원리원칙에 입각한 [[유교]]를 보았고, 따라서 유교식 [[제사]]는 종교적 색채가 탈피되었으므로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시골의 서민층 위주로 선교하였기에 각종 민간신앙과 섞인 [[유교]]를 보았고, 그렇기에 유교식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예수회]]가 Deus를 관용적으로 상제, 천(天)으로 번역 가능하다고 본 반면,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오직 [[천주]](天主)만이 가능하며 상제, 천으로의 번역은 Deus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이런 부분 외에도 은총논쟁 관련으로 [[예수회]]와 라이벌 격으로 대립하기도 하였다. 자세한 건 [[예정설|이 항목]]을 참조하자. 2016년 [[미국]]에선 황당한 오해를 당하기도 했다. [[쿠 클럭스 클랜|KKK]] 항목 참조. 2019년 7월 19일, 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회원이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필리핀]]계 신부로 88대 총장에 취임하여 9년간 재임한다. [[https://www.vaticannews.va/ko/church/news/2019-07/dominicans-new-head-timoner-philippines.html|바티칸뉴스 기사]] 도미니코회 출신의 네임드 근현대 신학자로는 마리조셉 라그랑쥬(Marie-Joseph Lagrange) 신부와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을 거론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