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굴 (문단 편집) == 상세 == 고대 [[이집트]] [[파라오]] 당시에도 밑으로는 생활비, 위로는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툭하면 [[피라미드]] 및 당시에도 횡행했던 도굴꾼들을 피하고자 조성된 [[왕가의 계곡]]에서도 횡행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와 전문성을 자랑하는'''(?) 분야. 이 때문에 인류사에서는 [[매춘]], [[첩자]], [[도둑]]과 더불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오래된 직업으로 꼽는다. 영어로 하면 Grave Robber,[* [[강도죄|강도]]를 의미하는 Robber에서, 무덤(Grave)을 턴다는 뜻이 합쳐진 것.] 또는 [[툼 레이더|Tomb raider]]. [[피라미드]]와 [[왕가의 계곡]] 항목에도 나오듯, 도굴꾼은 다른 여타 도둑과는 다른 끈기와 고고학적 전문 지식을 요구한다. 특히 현대에 오면서 더더욱 중요하다. 다른 도둑들의 목표는 분명하고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도굴꾼의 목표는 과거 유명하고 부유했던 이들의 유적이나 무덤에 묻히거나 안장된 부장물이다.[* 이 때문에 고생에 비해 건질 건덕지가 없을 게 뻔한 무덤은 [[부관참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봉분이나 비석, 특징적인 조형물 같은 단서가 있다면 찾기 쉽지만, 아무 티를 내지 않고 지하 등에 숨겨 위치를 모르는 경우도 있으므로 다수의 분업이나 협업을 요구하기도 하다. 개중엔 왕가의 계곡처럼 대대손손 가업으로 삼은 이들도 존재했다.[* 무덤 하나를 완전히 파내려고 몇 대가 무덤 옆에서 거주하고 나중에는 이들이 모여 마을까지 이루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무덤은 자손을 위한 예금통장(?) 목적으로 손을 안 대고 보존하기도 했다. ~~어이구 조상님 이런 무덤을 남겨주시다니.~~] 이미 죽은 이의 무덤을 파헤치는 데다가, 더욱이 도굴꾼들의 주 목표는 왕가 등 높으신 분들의 무덤이므로 동서고금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처벌이 매우 엄했다. 도굴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 얄짤없이 사형을 때릴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도굴꾼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설령 무덤을 찾더라도 해당 분묘가 어떤 곳인지, 그것을 얻기까지 어딜 얼마나 많이 파내야 하는지 등은 나름대로 상당한 지식과 기술이 요구된다. 또한 거기에서 얻은 부장품이 시장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알아야 하는데 [[장물아비]] 업자에게 장물을 헐값으로 파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여담으로 상당수가 석실이나 옹곽묘 같은 것만 뒤지고 자잘한 부분이나 봉분에 해당하는 외곽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일부 무덤은 거기에 유물이나 부장품이 남아있어 학자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굴꾼이 그들의 학술논문을 입수해 그곳에도 제법 값나가는 부장품이 있음을 알고는 그마저도 선수쳐 쓸어가기도 했다.(...)] 그밖에도 순례나 등산객으로 위장하고 유적지나 사원 터 등을 돌아다니며 탐침봉으로 마구 찌르고 돌아다니다 손끝의 느낌으로 무덤이나 부장품을 찾아내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 때문에 도굴꾼들의 탐침봉 사용으로 인하여 생긴 유물의 흠이 진품이라는 증명으로 통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도굴꾼들은 무덤을 쉽게 찾기 위해 심지어 [[풍수지리]]를 배우기도 한다. 풍수적으로 명당이라 할 만한 곳을 뒤져보면 옛 무덤이 나온다고 한다.[* 사실 명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땅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현대의 풍수지리로도 옛 무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도굴이 아닌 정식 발굴 조사에서도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무덤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무덤과 같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현대 무덤의 근처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삼국시대 무덤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동서양 막론하고 연구를 목적으로 남의 나라에 가서 그들의 유적, 유물을 조사한 다음 본국의 박물관[* 대표적인 사례가 [[대영박물관]].]으로 보내거나 개인 소유로 돌리는 학자들도 도굴꾼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일부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현지에서 도굴꾼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랭던 워너, 알베르트 폰 르콕 같은 실크로드 고고학자들.] [[제국주의]] [[식민제국]]에 대한 반감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서양 고고학자들을 '도굴꾼이나 다름없다.'고 매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현지 통치세력으로부터 정당하게 허락을 받고, 또는 구매하여 반출한 사례들도 있다. 문화재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현지 지배세력이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이를 용인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남의 나라 문화재들을 혼란한 시기에 가져가서 자기들 보물로 여기고 원래 국가에 돌려주지 않는 사례는 현대 사회에서 어느 나라도 영 좋게 보지 않는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자기들 맘대로 유물을 가져간 영국 및 식민열강들과 그리스 및 여러 피해자 국가들처럼 마찰이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