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탕트 (문단 편집) ==== 공산권의 내분 ==== 공산진영의 분열은 미국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소련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세계대전 전에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던 국가들로 이루어진 자유민주진영의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등과는 달리, 공산진영은 대빵 [[소련]]과 경제력과 군사력이 좋았던 [[동독]], [[체코슬로바키아]]나 덩치가 소련 다음으로 2위였던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와 또다른 맹주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게다가 중국은 배신~~ 대체로 강대국의 지배에서 갓 독립한, 상황이 영 좋지 않은 약소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마저도 독재정권이 수립되어, 민생상황이 좋지 않고 역(逆)쿠데타가 발생해 언제든지 정권이 뒤집어질 수도 있었던 파탄국(...)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분열된다면 소련의 국력만으로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즉 소련vs미국이나, 동구권vs서구권이나, 인구 수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공산진영은 자유민주진영을 넘지 못했다. 이마저도 아무 도움도 안되는 잉여인 중국을 제외하면 인구수도 5:3 정도로 공산권이 밀렸다. 서방세계가 가장 두려워하던 소련의 무식한 기갑전력 역시 서방이 예측하던 수십만 전차대군은 커녕 동유럽에서 가용가능한 전차를 모두 굴려도 10만 대를 조금 넘은 수였고, 그마저도 2차 세계대전 시기 T-34같은 예비군 전력까지 모두 더한 숫자였다. 경제적으로도 공산진영의 GNP는 상당히 부풀려져있었는데 명목상으로는 자유민주진영의 절반 가량이었지만, 실제로는 3:1 정도였다. 전세계 GNP에서 자유민주진영이 60%--그중 미국이 35% 이상(...)--, 공산진영이 20% 나머지 기타 20%로 자유민주진영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맞붙을만했던 핵전력 역시 중국이 공산주의 중립국이라고 가정한다면 서구권이 우세했다. 결론적으로, 서방세계가 겁내던 것은 그 당시의 공산권 자체가 아닌, 후진국들을 자신들과 대결해볼만한 수준까지 끌어올린 '''공산주의의 성장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성장력마저도 공산권의 핵심 선진국들이 70년대 중반 이후로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신화가 무너진다. 때문에 60~70년대를 즈음하여 중앙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서 공산권 내의 반소세력이 급증하자, 소련은 무리한 확장정책 대신 '일단 [[미국]]과는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공산권의 내부 질서부터 확실히 바로잡자'는 입장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 독트린[* "[[자유민주주의|공산주의에 적대적인 세력]]이 일부 공산국가를 자유민주주의로 이끌어들인다면, 이는 해당국의 문제 뿐만이 아닌 전체 공산주의 국가들의 문제가 된다." Gaddis, 2005, p.150]과 앞서 언급한 소련의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일련의 군사적 개입에서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